[우리말 바루기] '여과생활'은 스트레스를 여과하는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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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주변에 영화관과 공원이 있어 여과생활 좋음’.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서 윤택한 생활을 할지가 중요한 관심사다. 위의 광고에서 보듯 집을 얻을 때도 주변에 생활편의시설인 영화관이나 공원 등이 있는지가 고려 요소다. 문화생활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등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스트레스를 풀고 정신적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다.

 몸에 쌓인 스트레스를 여과시켜야 하기 때문일까. 남는 시간을 ‘여과시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하는 활동을 ‘여과활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찌 보면 내용상 ‘여과시간’ ‘여과활동’의 ‘여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에게 페이스북은 여과생활이다” “이 강의들은 취미생활과 여과활동에도 좋다”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일은 여과생활을 겸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등처럼 인터넷에는 ‘여과’라는 단어가 적지 않게 나온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적당한 여과생활에 뭐가 있을까요” “과거에 비해 여과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남들 놀 때 일해야 하니 여과생활이 어렵다” "백수 시절 개성만점의 여과활동은 어떤 게 있을까요” 등도 있다.

 하지만 남는 시간을 지칭하는 말은 ‘여과’가 아니라 ‘여가’다. 한자 단어로 ‘남을 여(餘)’자와 ‘틈 가(暇)’자가 결합해 이루어진 ‘여가(餘暇)’가 바른말이다.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을 뜻한다. ‘여가활동’ ‘여가시간’ ‘여가선용’ ‘여가지도’ 등으로 주로 쓰인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앞 예문의 ‘여과’는 모두 ‘여가’로 바꾸어야 한다.

 로건 P 스미스는 “여가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으면 조심하라. 영혼도 따라서 사라질 수 있으니까”라면서 여가생활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그렇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만 스트레스를 여과시키더라도 ‘여가’로 적어야 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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