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의 방위협력지침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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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자위대의 활동반경이 전(全)지구적으로 확장된다. 미·일 정부는 8일 도쿄에서 방위협력소위원회를 열고, 미군을 지원하는 자위대의 작전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하는 내용의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안 중간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대로 최종안이 확정될 경우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옛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1978년 처음 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북한 핵 위협의 여파로 97년 한 차례 개정됐다. 중국의 부상이 새로운 위협요소로 부각되면서 지난해 10월 양국은 올 연말까지 다시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재개정에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헌법 해석을 변경,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손을 썼다. 이 점이 이번 개정안에 적극 반영됐다. 일본의 힘을 빌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이 기회에 전후체제의 족쇄에서 벗어나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일본의 속셈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미·일의 군사적 일체화는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동북아에 새로운 냉전구도를 촉발할 위험이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심화하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한반도 유사시 일 자위대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점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중간보고서 발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안보와 우리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군사활동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최종 개정안에 우리의 이런 우려가 명시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주권국의 권리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그에 따른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우려하는 까닭은 군국주의적 침략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일본이 재무장과 군사 대국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일은 우리의 이 같은 우려를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