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둘의 열효율 더 높일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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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천5백여 년을 넘게 우리의 독특한 난방법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온돌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국립민속박물관은 28일 「우리나라 온돌」에 관한 학술 강연회를 열고 온돌이 갖는 열효율과 역사적 변천과정 등을 살펴봤다. 이자리에서 주남철교수(고려대·건축과)는『온돌의 기원과 변천』이라는 주제로, 최서국씨(국제열관리연구소)는『온돌의 열효율 특성』에 대해 각각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본다.

<장점과 개선점>
온돌을 구조별로 보면 ⓛ파이프 매설식 ②고래식 ③유니트식으로 나눌수 있다. 최근 많이 보급되고 있는 온수온들은 ①에 해당하며 ②는 우리나라 고유의 온둘이다. ③은 금속판을 쓴 조립식으로 국내에서는 사용되지 앉고있다.
온돌에 앉아었을 때 알맞게 느끼는 표면온도는 27∼35도이며 누워서 잘 때에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는 22∼25도다. 온돌 표면온도가 22도보다 낮을 때는 요를 깔고 자도 차가움을 느끼게 되고, 25도 이상일 경우는 바닥이 뜨거워 잠을 설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보온재로 시공하지 않은 재래식 일반 주택의 경우, 외부기온이 영하10도이하에서 실내온도를 약간 추운둣한 18도로 유지하기 위해서만도 온돌면적 1평방m (약 3분의1평) 당1시간에 약1백80킬로칼로리의 열량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온돌표면 온도가 3l도 일때의 방출열량은 시간당 1백25킬로칼로리, 35도 일때도 1백65킬로칼로리로 1백80킬로칼로리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온돌만 가지고서 쾌적한 접촉감과 알맞은 실내온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외풍이 세다』『외풍이 있다』는 것은 바닥과 실내공기 차가 심한데서 느껴지는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입식생활이 아닌 좌식생활에서 온돌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온돌표면으로부터 느끼는 감각온도가 입식생활의 온도보다 높아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온돌은 열효율면에서 보면 30∼70%로 다른 난방법보다 별로 뒤지지 않아 어느점도의 보완만 해준다면 좋은 난방법이 될 수 있다.
재래식 연탄구들은 열효율이 3O%로 가강 낮지만 취사·난방겸용에 편리하다거나 아무것이나 땔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많이 보급돼 있다.
탄연보일러를 쓰는 온수온들의 열효율은 60%나되고 안정성도 있어 점차 증가되는 추세에 있으며,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온수온돌은 열효율이 7O%로 높지만 계속되는 기름값 인상으로 경제성이 문제가 뒤고 있다.
그외에 레일식이라고 부르는 함실아궁이는 재래식의 2배나 되는 60%의 높은 열효율을 갖고 있지만 취사 때 일일이 끌어내야하는 불편 때문에 보급이 잘안되고 있는데 편이도를 높이는 보완이 따르면. 경제적인 온둘중의 하나가 될수 있다.
재래식 온들의 열손실은 부엌에서의 손질이 30%, 방고래에서 지표면으로 방출되는 것과 방고래의 외벽을 통한 손질이 17%, 연탄의 불완전연소에서 9%가 발생한다.
이런 온돌의 단점을 줄이기 위해서는▲고칼로리의 연탄사용▲연소통의 개량▲온돌의 단열시공▲통풍의 개선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여러가지 불가피한 조건 때문에 해마다 연탄의 질이 떨어지고 있어 연탄자체의 열량을 높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연탄을 완전연소시키는 쪽에서 개선이 있어야되는데 이때는 연소기(화덕)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연소기는 탄통의 두께가 2cm로 보온력이 약해 완전연소가 되면서 보온력을 갖는 연소기의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것만으로도 아궁이와 불완전연소로 인한 39%의 손실 중 일부를 줄일 수 있다.
또 아궁이와 굴뚝을 제외한 중간과정의 열을 1백으로 보았을 때 방고래의 벽과 바닥을 통해 손실되는 열량은35%로 고래 외벽과 바닥에만 열시공을 하면 손실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기원과 변천>
발견된 온돌의 형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함북 경흥군 웅기읍 송다동에 있는 선사시대 거주지다. 이것은 본격적인 온들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온돌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의 온돌과 연결되는 온돌의 기원은 삼국시대인 4세기말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 보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장갱을 만들어 그아래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해주었다」 는 기록이 나온다. 장갱이 바로 지금의 온돌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다. 그후 온들은 백제에도 전파됐고 마루와 함께 한국건축의 2대 구조를 이루게됐다.
조선조에 들어와 온돌을 전국적으로 보편화됐고 더욱이 중기 이후에 만든 온들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많아 고찰이 용이하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강릉시 죽헌동 소재 오죽헌 (보물1백65호)으로 1천4백년대의 온돌이다.
이조의 온들은 구들고래·아궁이의 형태에 따라 몇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방 전체를 구들고래와 구들장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한우도 전역에 분포한다.
둘째 방크기의 3분의2만 구들고래를 제대로 놓는 방법으로 제주도 지방의 주택들이 이 모습을 하고 있다. <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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