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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9대 0, 한·일 노벨 과학상 숫자가 웅변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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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출신 과학자 3명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친환경적 광원인 푸른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공로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원천기술을 개발한 기초과학자가 아니고 인류에 유익한 기술 개발에 성공한 응용과학자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기초과학을 넘어 다양한 응용과학 분야에서도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으로 일본 출신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19명, 일본 국적자는 17명이 됐다. 한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한 한국 입장에선 부러울 뿐이다. 수상자 숫자를 비교해 스포츠 경기 스코어처럼 ‘19대 0’이라고 표현한 용어도 인터넷 등에서 돌고 있다. 일본과의 경쟁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상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한국 과학자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과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국가적인 투자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숱한 인재와 연구비가 과학 분야로 흘러 들어가 과학기술 연구가 더욱 촉진되는 연쇄반응 효과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오랫동안 과학 연구에 헌신한 결과로 받는 것이지 군대처럼 작전을 펼치거나 기업처럼 사업계획을 추진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을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목표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노벨상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다만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여 인재와 자금이 몰리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미래를 먹여 살릴 가치를 창조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과학기술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절실하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실적 중심의 연구가 과학자들을 압박하는 분위기에선 노벨상은 고사하고 우리의 미래 살림을 책임질 일반 기술조차 제대로 개발되기 힘들다. 정부는 조바심을 내지 말고 차분하게 한국 미래 과학기술 연구의 청사진을 펼쳐야 한다. 노벨 과학상 수상은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물론 이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 그리고 미래를 열 수 있는 창조적 분위기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