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생명윤리인가 진보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의 '복제왕'으로 알려진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추출을 위한 인간 배아 복제에 성공한 뒤 다시 한번 과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5월 황 교수팀이 다시 한번 세계 최초로 환자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사실이 세계 곳곳의 신문 1면을 장식했으며 과학계는 손상된 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교체해 당뇨병.파킨슨병.신체 손상 등의 치료가 가능할 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황 교수팀의 연구는 다른 국가에서 수행하고 있는 연구보다 적어도 2년 앞서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있다.

복제 분야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는 이면에는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거의 무제한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치료용 복제 연구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올 하반기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연구협약팀을 발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부도 황 교수의 연구 지원금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연구비가 15억원이었던 반면 올해 프로젝트에 책정된 연구비만 20억원에 이른다. 내년부터는 4년간 30억원에 달하는 연간 연구비가 지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 및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대비되는 현상이다. 서구 정부는 생명윤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복제 연구에 대해 전적인 지원을 제공하길 꺼리고 있다.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줄기세포 연구용 복제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다시 거세게 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연구 성과를 반기는 분위기에서도 윤리 문제에 대한 열띤 토론 또한 촉발됐다. 이러한 논의는 특히 미국에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종교적인 우익 진영 로비스트들이 정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과학 및 경제 분야에서의 미국의 우위 유지에 대한 우려와 정치적 이슈가 한데 엉켜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황 교수의 최근 성과가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인은 엄격한 윤리 원칙이 지켜지는 조건 하에 복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촉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제 연구를 비윤리적이라고 규정짓는 보수적 견해보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적 혜택이 훨씬 크다고 믿어진다. 본인의 경험으로 봤을 때 복제 연구가 비도덕적이라거나 끔찍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가 고통받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불행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미분화 세포를 생명으로 간주하기는 무리다. 줄기세포가 환자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으로 전 세계 수많은 의사가 기대하고 있다. 파괴할 생명은 사실상 없고 구할 생명만 있기 때문에 도덕적 딜레마는 전혀 없는 것이다.

복제 연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판에 앞서 본 연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확신컨대 입장이 180도 바뀔 것이다. 물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연구가 가져다 줄 혜택은 인류에게 큰 기술적 진보임에 틀림없다. 이만큼의 성과를 이뤄냈는데 여기서 중단할 이유가 없다.

복제 연구의 핵심 목적은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데 있다. 윤리적 이유로 본 성과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암.에이즈와 같은 질병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게 비윤리적 행동은 아닌지라고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유전자 연구는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이의 진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태어나지 않은 세포를 위해 현재 살아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장자크 그로하 주한 EU상의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