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6월 송년회…생각 바꾸면 또 다른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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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벌써 1년'이란 노래도 있지만 6월만 되면 사람들은 입버릇처
럼 말한다. "벌써 올해도 절반이나 흘렀네!" 하지만 항상 그
뿐, 12월의 소란스러움이나 1월의 비장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 해의 절반을 점검하고 하반기를 향한 발걸음을 다
져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여기 한 해의 후반전
을 예고하는 6월을 아주 특별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기
업이 중간결산을 하듯 연초 세웠던 계획을 점검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또 다른 새해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의 6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5, 6월은 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마의 계절'. 화창한 날씨와 함께 3, 4월의 긴장도 풀린다. 독하게 했던 결심은 매너리즘에 빠져 지리멸렬해진다. 그래서 이 시기는 수험생들에게 최대의 고비라고 한다.

지난해 6월 재수생 아들을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박재영(50.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씨가 엄마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6월 가정 망년회'.

박씨는 우선 문구점에서 다이어리 속지를 사다 아들의 책상에 올려놓고 속지 맨 겉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놓았다.

"아들아, 넌 7월 1일이 새해야. 올해 네게 새해는 두 번 있는 셈이야."

두 번이나 받은 새해 메시지가 아들에겐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며칠 뒤 아들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공부에 다시 전념하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박씨는 온 가족이 참여하는 6월 송년회 이벤트를 열었다. 가족 모두 관악산에 등반해 땀을 흠뻑 내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케이크를 사와 12월 송년회와 똑같이 모두의 소원을 빌며 7월의 각오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연초의 신선한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올 6월에도 박씨는 송년회를 열 예정이다. 새해 세워뒀던 목표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앞으로 남은 반년에 대한 계획과 각오를 서로 얘기하고 들어주기로 했다.

토익 준비와 새벽 조깅을 새해 목표로 세웠던 큰아들, 기타 연습을 열심히 해 대학 동아리 보컬 오디션에 합격하겠다던 작은아들, 중국어 마스터와 금연에 도전해 보겠다던 남편, 젊은 시절 읽었던 명작을 다시 읽어보겠다는 야무진 독서 스케줄을 잡았던 박씨. 가족 모두는 얼마 남지 않은 6월 망년회까지 부족한 새해 목표를 채우기 위해 자신을 다잡고 있다.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나니 주위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서울 구로동의 최윤정(39)씨가 12월에 송년회를 겸해 모이던 친구 모임을 6월에 한 번 더 만든 것은 5년 전.

"1년에 한 번 만나니까 너무 소원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1년의 절반인 6월에 한 번 더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12월 모임은 모두가 바쁜 시간이라 스케줄 잡기도 어렵고 가족이 함께 만나는 경우가 많아 자신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힘들다. 6월은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최씨는 매년 6월 6일로 날짜를 정해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있다.

"경건한 날이다 보니 가족모임도 없고 휴일이어서 지방에 사는 친구도 움직이기 좋아 안성맞춤입니다. 연말과 달리 식당에서 오랫동안 앉아 수다를 떨어도 되고 바깥 날씨도 좋아 12월 망년회는 빠져도 6월 모임은 절대 빠지는 일이 없어요."

최씨와 그 친구들은 6월 모임을 '상반기 송년회'라 부른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망년회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6개월간의 생활을 돌아보고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에너지로 남은 6개월을 즐겁게 보내니 송년회라 불러도 되겠죠?"

나이든 사람들의 1년은 젊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 때문에 어르신들에게 1년의 후반전은 더 각별하다.

세상에 따듯한 관심을 보내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김현숙(65.서울 청담동)씨는 잔잔한 이웃사랑에 늘 부지런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에 모이는 어려운 노인들에게 빵과 우유를 사서 건네주는 선행은 김씨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소박한 나눔 중 하나.

"빵과 우유 값 마련은 자비로 하기도 하지만 좋은 일로 기뻐하는 친구들에게 찬조금을 받아 마련해요."

1년의 전반전과 후반전을 가르는 6월이 오면 김씨는 자신만의 특별한 행사에 발걸음이 더 바빠진다. 다름 아닌 노인과 함께 하는 목욕탕 나들이.

"여름이 되면 땀이 많이 나 목욕을 자주 해야 하는데 노인 분들이 혼자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기는 쉽지 않아요."

혼자 하는 목욕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김씨는 성당에서 만나는 어려운 노인을 모시고 목욕탕 나들이에 나선다. 그곳에서 그는 노인의 등도 밀어주고 간식도 대접하며 하루를 보낸다. 김씨는 목욕탕 나들이에 '봉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목욕을 하면 마음의 때도 말끔히 벗겨지잖아요. 일상의 때를 말끔히 벗겨내고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운 7월을작할 수 있으니 이 일은 나의 또 다른 출발을 위한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큰 봉사부터 하려 하지 말고 노인의 등을 밀어주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 보라고."

박완정(주부통신원)

*** 7월, 생활의 '업데이트'

.다이어리 속지를 갈아끼우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될 것이다.

.컴퓨터 초기화면과 휴대전화 초기화면을 바꾸자. 산뜻한 기분이 절로 들 것이다.

.집안에 있는 액자 속 사진도 바꾸자. 같은 얼굴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나 안부 e-메일을 보내자.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감동을 전할 것이다.

.새해 초 세웠던 계획이나 목표를 점검해 보자. 느슨해진 자신을 다잡게 될 것이다.

.수험생이 있다면 이참에 조촐한 가족모임을. 상반기 결산과 하반기 다짐을 하는 자리로 제격.

도움말: 박재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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