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 2명이 경찰 70명 농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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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명의 경찰이 배치된 상황에서 '몸값' 2억원을 건네받은 납치범들이 경찰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지난 22일 새벽 괴한들에 납치됐던 대전지역 K건설 대표 부인 김모(59)씨가 납치된 지 44시간 만인 24일 오전 1시14분쯤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K아파트 단지 뒤편 야산 약수터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납치범 검거를 위해 배치됐던 경찰은 눈앞에서 범인을 놓쳤다.

범인들은 23일 오후 8시40분쯤 김씨의 작은아들(27)에게 전화를 걸어 "대전역에서 오늘 중 만나자"고 통보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중부서 소속 형사 20여 명은 대전역 주변에서 매복한 채 범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범인들은 24일 0시19분쯤 김씨 아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벤츠승용차를 타고 0시40분쯤 충남대 정문 앞에서 준비한 돈을 갖고 기다려라"고 요구했다.

경찰의 현장 동행조 2개팀 10여 명과 김씨의 친척들은 차량 6대에 나눠 타고 벤츠를 쫓았다. 그러나 주유소 근처에 이르자 범인들은 다시 "서쪽으로 1㎞ 떨어진 노은동 K아파트 단지 내 B찜질방 인근 골목에서 만나자"고 하는 등 교란책을 썼다. 이들은 경찰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이동 중에 전화를 거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씨 아들의 승용차가 찜질방 골목으로 향하는 순간 경찰은 차량을 놓쳤다.

경찰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범인 2명 가운데 1명이 아들차에 올라타고 소로를 통해 인근 야산의 약수터에서 김씨를 붙잡고 기다리던 다른 공범과 합류했다.

범인들은 0시55분쯤 현금을 건네받자마자 이들 모자를 남겨두고 벤츠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뒤 찜질방 부근에 차를 버렸다.

김씨 아들의 신고로 경찰이 약수터에 도착한 시간은 1시14분쯤. 그동안 경찰은 벤츠승용차의 위치를 찾느라 허둥댔고 김씨 아들에게서 "어머니를 만났다"는 전화를 받고 본격적으로 검거에 나섰으나 범인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2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범인들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수사와 범인 검거에 어려움이 컸다"며 "인질이 무사히 돌아온 만큼 범인 검거를 위해 모든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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