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표, 켈리 복도로 불러내 "核 있다"

중앙일보

입력

베이징(北京) 북.미.중 3자 회담에서 북한이 '핵 보유'라는 폭탄 발언을 한 정황이 매우 관심을 끌고 있다. 회담 공식 석상이 아니라 만찬 도중 '복도 구석'에서 했으며, 여러 미묘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북한 수석 대표인 이근 외무성 부국장은 23일 공식 회담이 끝난 뒤 열린 만찬장의 복도에서 미 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한쪽 구석으로 잡아 끌어 핵 보유를 통지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근 대표는 "1993년에도 (클린턴 행정부에) 이를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북한이 93년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근 대표는 회담 석상에선 "8천개의 사용후 핵연료봉의 재처리를 거의 끝냈다"는 것까지만 말했다. 이것도 "핵 재처리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난 18일의 외무성 대변인 발언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근 대표는 그러면서 북.미 간 양자 대화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제임스 켈리 미 대표는 북한의 핵포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이 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통해 남한 측에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상기시키며 한반도에 핵무기가 있어선 안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날 공식 회담 자리는 매우 경색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성이 오가고 책상을 치는 험악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핵 보유 발언의 표현도 미묘했다. 이근 대표는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를 해체할 수는 없다. 우리가 물리적 입증(physical demonstration)을 하거나 이전(transfer)하는지는 당신한테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의 앞부분은 핵무기의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핵무기 보유를 포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물리적 입증'과 '이전'이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물리적 입증은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핵실험.핵무기의 사용을 뜻할 수도 있고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핵무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전이라는 표현 역시 수출 또는 확산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미국으로 양도한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보유 발언은 미국과 협상을 염두에 둔 카드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고의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협상의 '판'을 키우고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오영환.정용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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