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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 최근 한국 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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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바린 엥흐바야르(56) 전 몽골 대통령이 최근 한국에 망명했다고 한국 정부 당국자가 밝혔다. 외국 전·현직 국가 원수가 한국에 망명한 건 처음이다. 엥흐바야르의 망명은 그가 대통령 시절 행한 부패 혐의로 퇴직 후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엥흐바야르는 2005~2009년 몽골 대통령을 지냈다. 소련 막심 고리키 문학대와 영국 리즈대에서 수학한 후 1980~90년대 시인 겸 번역가로 활동했다. 92년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진출, 문화부 장관(92~96년)을 맡았다. 이후 인민혁명당(MPRP) 총재를 거쳐 총리(2000~2004년), 국회의장(2004~2005년)을 역임했고, 2005년 5월 야당이던 인민혁명당 후보로 몽골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몽골에서 3대 요직인 대통령과 총리·국회의장을 모두 지낸 최초의 인물이다.

좌파 정당 출신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재임 시절엔 사회주의 국가이던 몽골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려는 노선을 폈다. 로이터통신은 엥흐바야르에게 ‘아시아의 토니 블레어’란 별명을 붙였다. 미국은 2억8500만 달러의 원조를 그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2009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몽골 반부패수사국(IAAC)은 2012년 4월 그를 체포했다. 국유 자산인 공장과 호텔 등을 불법적으로 그의 가족 소유로 이전한 혐의였다. 당시 엥흐바야르는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몽골 정치계 전반의 관행이었다”며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그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법원의 요청을 받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입후보를 거부당했다. 구속기간 중 단식 투쟁을 벌였고 그와 친분이 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몽골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에 회부된 엥흐바야르는 최종심에서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감 기간 대부분을 정부 고관들을 치료하는 제2종합병원에서 보내다가 지난해 8월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 사면을 받았다.

 엥흐바야르는 이후 주로 한국에 머물며 신병 치료와 대외 활동을 이어갔고 최근 그와 가족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 한국과 각별한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당시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에게 광산 개발 등 공동 사업들을 제안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2006년 한국에서 만해대상(포교 부문)을 받았다. 2007년엔 서암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한국 망명은 지난달 몽골 현지 매체에서 처음 보도됐다. 하지만 인민혁명당 사무총장이 이를 부인해 몽골 내에서 이슈가 되진 않았다. 엥흐바야르는 현재 인민혁명당 총재이기도 해 그의 한국 국적 취득은 몽골에서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당시 현지 언론은 몽골 정부가 엥흐바야르의 국가 부동산 불법 취득 혐의에 대해 재고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망명 배경으로 들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엥흐바야르는 현재 사면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 취득에 양국 간 법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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