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뒤흔든 '벨린다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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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린다 스트로나치가 17일 보수당 탈당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그는 19일 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아래사진은 연인이자 보수당 2인자인 피터 매케이와 함께 2월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이스트코스트 음악상 시상식에 나란히 참석해 웃고있는 모습. [오타와·시드니 AP=연합]

여성 정치인 한 명 때문에 캐나다 정계가 떠들썩하다. 언론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정치 사건'이라며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다. 주인공은 캐나다 보수당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벨린다 스트로나치(39) 의원. 그가 야당인 보수당을 전격 탈당하는 바람에 자유당 정부가 정권을 연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벨린다 스토리가 캐나다 국민을 사로잡은 이유는 사랑과 배신, 정치적 야망과 밀실 흥정, 그리고 돈 등 온갖 드라마적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뛰어난 미모의 벨린다는 백만장자의 상속녀다. 그의 아버지는 '마그나 오토 파트'라는 자동차 부품 회사를 차려 부자가 됐다. 토론토 요크대를 1년 다니다 중퇴한 벨린다는 아버지 회사의 간부와 첫 결혼을 했지만 두 아이를 낳은 뒤 이혼했다. 두 번째 결혼 상대는 노르웨이의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도 벨린다는 사업 수완을 발휘해 2001년 캐나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포춘지도 2000년 세계에서 둘째로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으로 지목했었다.

그는 2004년 1월 갑자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보수당 총재 선거에 뛰어든 것이다. "병들고 낡은 자유당 정부를 몰아내고 보수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하겠다"는 구호였다.

총재에는 스티븐 하퍼가 당선됐다. 벨린다는 2위였다. 그해 6월 온타리오주에서 의원에 당선된 벨린다는 "하퍼의 후계자는 나"라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다녔다. 그가 더 유명해진 건 보수당의 2인자 피터 매케이(39)와의 염문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올해 초 동거를 시작했다. 매케이 역시 유명 정치인 가문이기 때문에 언론은 이들을 '가장 막강한 커플'로 불렀다. 하지만 벨린다가 술수의 측면에선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지난 16일 매케이는 벨린다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 뒤 벨린다는 폴 마틴 총리 관저로 가 총리와 함께 두 번째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벨린다는 마틴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보수당 탈당을 선언했다. 그리고 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벨린다는 "보수당은 퀘벡주 분리를 주장하는 당과 연합하려 하는데 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당보다 국가가 중요하다"고 탈당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매케이는 "벨린다가 이런 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난 배반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9일 캐나다 의회는 예산안 투표를 했다. 여기서 정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자유당 정권은 무너지고 총선거를 할 판이었다.

투표 결과는 152 대 152였다. 벨린다가 자유당으로 넘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당 소속인 하원의장이 결정권(캐스팅 보트)을 행사해 예산안은 통과됐고, 자유당은 살아남았다. 벨린다가 과연 앞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할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좇아 애인과 당을 버린 잔혹한 여자'로 평가받을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건 캐나다 국민에게 달렸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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