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적 포기 논란 균형감각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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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개정 국적법 시행을 앞두고 국적 포기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국적 포기를 비난하는 글들이 꼬리를 물고 있고, 일부 언론 매체에선 자녀의 국적을 포기한 지도층 인사들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 개정된 국적법의 골자는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거나 면제받기 전에는 우리 국적을 포기할 수 없게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중 국적자들의 병역 회피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원정출산이나 부모의 유학 또는 해외근무 중 출생을 이유로 외국 국적을 얻은 뒤 국가에 대한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국적을 포기하고 해외 동포로서 혜택만 누린다면 이는 바로잡아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이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 국적법은 적잖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법으로 국적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특정 연령대를 정해 이를 박탈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더구나 세계인권선언은 '국적 변경의 권리가 거부되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병역 이행을 무기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녀 역차별도 문제다. 같은 여건에서 출생한 경우라도 남자는 병역의무를 마칠 때까지 국적 선택의 자유가 없는 반면 여자에 대해선 22세까지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들이 어린 자식의 국적을 포기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해 11월 국회 법사위에서 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 가운데 119명이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라는 보도여서 이에 분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득이하게 국적 포기를 신청한 사람까지 싸잡아 매도해서는 안 된다. 병역 회피가 분명한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면 될 일이다. 국적 포기를 감정적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는 방안인지 합리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