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문한 우이 중국 부총리 '고이즈미와 회담' 돌연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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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방문 중인 우이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23일 도쿄에서 일본 경제단체 연합회가 마련한 오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도쿄 AP=연합]

일본을 방문 중이던 우이(吳儀)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2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예정된 회담을 6시간 전에 갑자기 취소하고 귀국했다. 국가 수뇌급 인사가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한 것은 외교 관례상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중.일 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 전격 회담 취소=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일본 관방장관은 23일 오전 "고이즈미 총리와 우 부총리의 회담이 중국 측의 요청으로 갑자기 취소됐다"고 밝혔다. 우 부총리는 이날 오후 4시20분부터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날 오전 10시쯤 "국내에서 긴급 공무가 생겼다는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오후에 귀국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일본 측에 통보했다. 우 부총리는 아이치(愛知) 만국박람회를 둘러보기 위해 지난 17일 방일해 24일까지 머물 예정이었다.

◆ 취소 이유는=일본 외무성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해 중국 측은 "없다"고 회신했다고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전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와 정계에선 야스쿠니와 관련 있을 것이란 해석이 많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 16일 중의원에서 '외국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며 계속 참배할 뜻을 내비친 것이 중국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은 22일 중국을 방문한 일본 여당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행동"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강력히 비판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우 부총리가 이런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회담하면 양국 관계에 마이너스라는 판단을 중국 지도부 차원에서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일본 반응=당혹과 유감이 교차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나는 (일.중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 왔다"며 "왜 취소했는지 모르겠으나 저쪽이 만나고 싶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호소다 장관은 "'긴급 공무'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였는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선 "외교 관례상 실례"라며 중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 측이 만나자고 해 만나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측이 밝힌 '긴급 공무'내용 여하에 따라선 양국 관계가 한층 얼어붙을 가능성도 크다. 우 부총리는 24~26일 몽골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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