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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불러 망신주기 … 올 국감도 이럴 겁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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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마구 부르는 실태를 보도한 본지 2013년 10월 16일자 1면.

올해도 변한 게 없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가 또다시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채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위는 2일 김병렬 GS칼텍스 대표,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도 배경태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 등을 채택했다. 이 두 위원회가 채택한 기업인 증인만 47명이다. 아직 증인 채택이 끝나지 않은 상임위가 많은 만큼 기업인 증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국감의 기업인 증인 수는 해마다 증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1년 80명에서 2012년 164명으로, 지난해엔 177명으로 늘었다.

 꼭 필요한 증인이라면 불러야 한다. 지난해 8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상원의 조세 회피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일이 있다. 문제는 한국 국회의 경우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증인 채택이 관행처럼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사법처리가 끝난 기업인을 국회가 똑같은 사유로 다시 증인으로 부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해 10월 18일 금융감독원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 국감에는 두 명의 외국인 CEO가 출석했다. 스티븐 바넷 AIG손해보험 대표와 존 와일리 ING생명 대표였다. 한국어가 서툰 이들을 위해 통역사도 대기했다. 그러나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9시17분에 끝난 감사에서 바넷 대표에게 질문한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놓고 증인 신문을 안 한 경우는 8개 상임위에서 31명에 달했다. 이 중 기업인이 14명이었다. 환경노동위의 경우 기업인을 포함한 일반 증인의 평균 대기 시간은 4시간19분이었고, 평균 답변 시간은 2분28초였다. 3분도 안 되는 답변을 위해 회사 대표나 중요 임원이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인의 정상적 경제활동에 반하는 무차별 증인 채택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렇게 매년 구태가 되풀이되면 국민이 폭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에선 걱정과 한탄이 쏟아졌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국회가 정부를 감사해야 할 국정감사에 기업인을 불러 망신 주기식 감사를 하고 있다”며 “기업은 국감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문제 기업처럼 낙인찍혀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의원들이 국감을 기업의 경영활동을 방해하는 수준으로 남용하고 있다”며 “‘국정감사법’을 개정해 의원의 재량권 남용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7일부터 20일 동안 열리는 국정감사의 대상 기관으로 672곳을 확정했다. 지난해보다 42곳이 늘어 제헌국회 이후 최다 기록이다.

이가영·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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