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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산으로 … 피아노가 바람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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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보도에서 열린 ‘달려라 피아노’ 공연. 프로·아마추어 피아니스트 6명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 달려라피아노]

1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보도. 퇴근 발길이 이어지는 곳에 피아노 6대가 놓였다. 피아니스트들은 세종문화회관을 바라보고 앉았다. 그들의 등 뒤로는 버스가 줄지어 지나가며 소음을 냈다.

 연주가 시작됐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아리랑부터 시작해 창작곡까지 연주가 이어졌다. 지나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피아노를 에워싼 채 음악을 들었다.

 지난달 23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는 ‘달려라 피아노’ 페스티벌이다. 공연 기획자 정석준(43)씨가 만든 축제로 광화문, 선유도 공원의 아무 곳에나 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공연장’이라 주장한다. 광화문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정씨는 “‘일상 속의 예술’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진짜 가능한지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피아노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도록 스피커를 조정했다. 먼 곳까지 들리면 사람들이 피아노 가까이 다가와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얕은 무대조차 설치하지 않았고, 음악회임을 알리는 표시도 없었다. 청중을 위한 의자는 당연히 없었다.

 이처럼 최근엔 공연장을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3일 낮 12시엔 피아노가 산으로 올라 간다. 해발 1159m인 울산 신불산의 1000m 지점 평원에서 작곡가 박창수(50)씨가 피아노와 춤이 함께 하는 무대를 펼친다. 피아노를 트럭으로 배달해야 한다. 하늘·땅·사람의 공존을 보여주려는 기획이다. 박씨는 피아노를 치고 한국 무용가, 색소폰 연주자가 호흡을 맞춘다. 대부분 즉흥 연주·무용이다.

 박씨는 2002년부터 공연장이 아닌 주택, 즉 ‘살림집’에서 매달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이달로 413회째다. 지난달 26일에는 전북 김제의 한 초등학교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공연을 진행했다. 초등학생 70여 명이 강당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들었다.

 박씨는 “한정된 장소에서만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음악을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장소의 변화는 일종의 귀족주의를 허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달려라 피아노’ 기획자 정석준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3년 동안 대형 공연장에 근무했는데, 결국에는 오는 관객만 오더라”는 거다. 피아노가 새로운 관객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시도는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달려라 피아노’는 영국에서 2008년 시작된 ‘스트리트 피아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 설치 미술가가 거리에 피아노를 놓고 공연했다. 미국에서는 ‘팝 업 피아노’라는 제목으로 피아노가 거리에 등장했다 연주하고 곧 사라지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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