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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동평구 실현이 어렵고도 중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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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박근혜 정부는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외부환경 아래서 동북아평화협력기구(동평구)의 깃발을 올렸다. 아직은 개념단계지만 통일과정의 독일의 사례를 봐도 주변 주요 국가들의 충돌하는 이해와 야망을 한 그릇에 담아 조정하는 다자기구 없이 통일의 조건은 갖추어지지 않는다. 그런 다자기구는 한반도 통일뿐 아니라 미·중·일 경쟁에서 파생하는 아태 지역의 복잡다기하고 위험한 분쟁과 대결을 평화와 협력으로 대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동평구의 발목을 잡는 외부환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발단은 중국의 급성장과 거기에 따른 태평양 전략의 대전환이다. 중국 해군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류칭화는 1982년 중국 해군사령관 겸 해군 당위원회 부서기에 취임하자마자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에게 해군전략을 연안방어에서 근해적극방어로 전환하자고 건의했다. 중국의 태평양 전략의 핵심은 대만 유사시에 미국의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 전략개념에 따라 중국은 큐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을 연결하는 제1열도선을 미·중 대결의 주무대로 삼아 왔다.

 그러나 류칭화의 새 전략개념에 따라 중국은 제1열도선을 박차고 나가 일본의 이즈반도-오가사와라-괌·사이판-파푸아 뉴기니를 잇는 제2열도선 서쪽 해역으로 해상대결의 주전장을 옮겼다. 실천계획으로 도입된 것이 류칭화의 A2(Anti Access)와 AD(Area Denial) 전략이라는 것이다. A2는 제2열도선 내 해역에서 중국의 군사작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전략이다. 중국의 주무기는 미사일과 강화된 해군력이다. AD는 제1열도선 안에서 미군의 작전 전개를 저지하는 전략으로 주로 중국 내 기지에서 발진하는 전투기와 미사일이 사용된다.

 이 A2 AD 전략을 보완한 것이 1987년 인민해방군 소장 슈광유가 제안한 전략적 변강론이다. 전략적 변강론의 핵심은 중국이 그 안에서 안주하던 12해리 방어 전략을 버리고 중국이 직면한 현실적, 잠재적 위협을 해상 300만㎢의 해양관할구역까지 밖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전략이다. 그 300만㎢에는 우리의 서해와 동중국해·남중국해가 포함된다. 중국대륙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이 광대한 해역을 ‘중국의 바다’로 간주하는 것은 전통적인 중화세계의 사고다. 중국은 이런 야심적인 태평양 전략에 맞는 주병기로 동평(DF) 계열의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동평계열의 중·장거리 미사일에는 핵탄두의 탑재가 가능하다. 공군에서는 중국의 지상기지에서 발진하는 J 계열 전투기 147기를 실전배치했다.

 중국이 동·남중국해에 집착하는 이유는 태평양의 안보이익만이 아니다. 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동중국해 주변 해저에 1095억 배럴로 추정되는 석유매장량을 확인했다. 중국도 독자적 탐사로 700억~1600억 배럴의 석유매장량이 있다고 추정했다. 그때부터 중국의 국영석유총공사(CNOOC)는 일본이 중·일 경계선으로 설정한 중간선 근해에서 본격적인 석유와 가스 개발에 착수했다. 중국은 중간선 인정을 거부하고 오키나와 트러프(배 모양의 바다분지)까지 미치는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도 중국대륙의 석유 총매장량 246억t과 맞먹는 석유매장량을 발견한 뒤 남중국해의 중앙에 위치한 스프래틀리(남사군도)에서 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1974년 이미 파라셀(서사군도)에서 베트남을 격퇴하고 활주로를 건설해 남중국해 지배의 거점으로 삼아버렸다.

 미국은 중국의 거친 도전에서 태평양의 해상수송로를 포함한 기존질서를 지켜야 한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기와 범태평양경제파트너십(TPP) 구상도 그래서 나왔다. 미국과 중국이 사드(THAAD) 미사일 배치를 싸고 한국에 경쟁적으로 압력을 넣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미·중·일 경쟁이 가열될수록 동평구의 실현은 어렵고 동시에 존재이유도 높다. 중국이 태평양의 절반을 ‘중국의 바다’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꿈, 1661년부터 1796년까지 강희·옹정·건륭제 치하의 청 중국이 지배한 동아시아의 넓은 강토를 회복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꿈을 버리지 않는 한 태평양은 계속 불안할 것이고, 불안의 파장은 한반도까지 밀려올 것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들을 움직여 지역질서를 바꾼 역사적인 전례가 없다. 그러나 언제나 ‘최초’는 있는 법이다. 한국이 그 ‘최초’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미·중·일 대결의 실체와 흐름, 그들의 전술·전략을 정확히 읽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예술의 경지 같은 고차원의 외교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