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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언론 자유와 신문 배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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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가진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좋든 싫든 습관적으로 신문을 읽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만약 배달 신문이 없어 매일 편의점에 나가 신문을 사 읽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하철 승객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신문부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전국지가 우편을 통해 배달되고 있는 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우 신문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몇 주 전 프랑스 신문 발행부수 조사기구(OJD)의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사르트르가 창간한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지는 전년 대비 독자가 14.9%, 대중 일간지인 르 파리지앵은 10% 이상, 최대 일간지인 르 몽드지도 4.4%나 각각 줄어든 것이다. 격감한 광고 수입은 별도의 문제다. 어디에도 속박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신문이라는 리베라시옹. 지난해 격감하는 판매 부수를 끌어올리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아 남는 유일한 방법은 더 빨라지는 것이다”며 속도전을 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최근 리베라시옹지는 매일 쌓이는 4만4000유로(약 6000만원)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전 직원의 3분의 1(250명 중 93명)을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신문들이 그나마 생존해 나가고 있는 배경은 바로 정부의 보조금 덕분이다. 프랑스 정부는 언론 진흥(?)을 위해 매년 4억 유로(약 6000억원)를 신문사들에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2012년의 경우 르 몽드지에 1870만 유로, 르 피가로지에 1830만 유로, 그해 폐간된 웨스트 프랑스지에 1200만 유로가 국고에서 지원됐다. 이 4억 유로 중 2억5000만 유로가 정기구독자에게 배달되는 우편요금이고, 이 돈은 모두 프랑스 우체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신문 한 부 가격의 3분의 1인 46센트(약 630원)가 국고가 지불하는 우송료다. 이처럼 국가 보조금은 신문 개혁, 구조조정에는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정부는 언론에 개입하지 않는다. 문제는 적자가 누적되면서 투자자들이 발을 빼고, 자연 남아 있는 대주주들의 입김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르 피가로지의 대주주는 무기상인 세르주 데소, 경제지인 레제코의 대주주는 럭셔리 부호 LVMH이니 이 신문들이 과연 대주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론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바로 경제적 메커니즘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나마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우리의 신문 배달 시스템이 우리의 언론 자유를 지키는 셈이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