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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집 사라진다, 먹는 이가 없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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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초복날 손님이 벗어놓은 신발이 가득 들어찬 한 보신탕집 모습. 2005년 528곳에 이르던
서울 보신탕집은 2014년 9월 현재 329곳으로 200곳 가까이 줄었다.

“이번 복날에도 안 먹었어요. 근처에 보신탕집이 없을 뿐더러 주변에 나 말고는 아예 먹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다고 혼자 저 멀리 있는 보신탕집 찾아가기도 귀찮고. 20대 때부터 먹기 시작해서 1990년대 초반까지도 많이 먹을 때는 한 달에 두세 번은 먹었는데 요즘은 한 해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해요.” (자영업자 이모씨·52·대치동)

 “4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좋아했는데, 지금은 누가 일부러 가자고 졸라야만 가요. 개고기가 중국산이라는 소문도 신경쓰이고 음식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영상도 기억나서 먹기가 영 찝찝하더라고요.” (직장인 고모씨·50·인천 동춘동)

 “전에는 부서 회식을 보신탕 집에서 하면 한두 명만 다른 메뉴를 시켜먹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열에 셋은 먹지 않아요. 그러니 복날이라고 단체로 보신탕 집 가자는 말은 안 나오더라고요.” (회사원 안모씨·44)

 복날은 물론 한때는 아저씨들의 연중 단골메뉴였던 ‘보신탕’. 하지만 이젠 찾는 사람이 확 줄어 유명 식당조차 문을 닫을 지경이 됐다. 실제로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정계 인사와 언론인들 단골집으로 유명한 마포구 도화동 대교사철탕은 지난달 문을 닫았다. 30년 넘게 전통을 이어왔으나 손님이 너무 줄어 고기구이집으로 업종 변경을 하려고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보신탕을 즐겨찾는 노년층은 여전하지만 젊은층 유입이 거의 안 되다보니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거다.

 이 집뿐이 아니다. 2005년 528개나 되던 서울시 보신탕집(식용견 조리음식점) 수는 현재 329곳(9월 26일 기준)에 불과하다. 이철환 서울시 외식업위생관리팀 주무관은 “담당자인 내가 일부러 찾으려 해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수가 줄었다”며 “공무원들도 전에는 꽤 많이 갔는데 이젠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80년대 초엔 외국 언론의 눈을 의식한 정부가 보신탕 영업을 잠시 금지하기도 했다. 홍헌우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정책조정과장은 “80년대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대로변 보신탕집을 단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전혀 줄지 않았다. 단속이 심했던 80년대 중반에만 잠시 주춤하다, 올림픽 후 90년대 초반까지는 오히려 80년대 초반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다 2002 한일 월드컵 직전 다시 한번 논란이 빚어졌다. 이번엔 꼭 외국인의 곱지 않은 시선만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개에 대한 학대 문제와 비위생적인 유통과정이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게다가 개를 가족 일원으로까지 생각하는 애견 인구가 최근 급증한 것도 보신탕 인기가 확 꺾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한국애견협회는 2003년 한국 애견인구를 1000만명으로 추산했다. 수만 많은 게 아니다. 500ml 한 병에 3000~1만원인 애견 전용 생수를 먹이고, 개 유치원에 보내 사회성 길러주고, 집에선 개가 보는 개 전용 TV채널을 시청하게 하는 등 개를 각별하게 대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보신탕 인기가 예전과 같을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식컨설턴트 김중민 FC전략 연구소장은 “지난해 12월 대구의 한 고객 의뢰로 1·2층 규모 보신탕집을 소머리국밥집으로 바꿨다”며 “나름 입소문 난 집이었는데 보신탕을 즐기는 층이 40대 이상 남성만으로 제한된 데다 원재료 수급이 불안정해 더 이상 영업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박태순 음식 칼럼니스트는 “영업 부진으로 보신탕집이 줄면서 오히려 몇몇 집엔 손님이 몰려 장사가 잘 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이제 개고기를 대체할 만한 보신음식이 워낙 많기 때문에 보신탕은 아주 일부만 즐기는 매니어 음식이 되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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