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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복거일 "포퓰리즘 막겠다" 여당 혁신위원 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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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 이완구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5일 국회에서 혁신특위 인선과 관련한 기자간담회 뒤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어두운 피부, 야윈 얼굴에 퍼진 작고 깊은 주름에서 병세를 읽을 수 있었다. 명함 대신 저자 서명이 들어간 책 한 권을 기자에게 건넸다. 『리지웨이, 대한민국을 구한 지휘관』. 소설가 복거일(68·사진)씨의 최근 저서다.

 25일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혁신위) 위원으로 임명된 복씨를 만났다. 2004년 소설가 이문열씨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은 이후 10년 만에 당 핵심 기구에 진입한 작가다. 공교롭게 당시 공천심사위원장도 김문수 현 혁신위원장이었다.

 복씨는 간암 말기 환자다. 그러나 목소리는 열정적이었고, 손짓엔 소신이 묻어 나왔다.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정치권에 쓴소리를 해온 복씨는 “새누리당은 정체성이 모호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커졌다. 새누리당 대부분이 중도좌파”라며 “ 먼저 정체성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복거일

  -무엇이 당신을 불렀나.

 “김문수다. 김 위원장은 내게 은인이다. 그의 부탁을 거절할 입장이 못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비대위원장으로 이상돈·안경환 교수 같은 지식인들을 영입하려 한 것처럼 ‘보수 지식인’인 내가 필요했던 것 같다.”

  -김 위원장에게 뭘 빚졌길래.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내가 이끌던 ‘문화미래포럼’이 국군포로 조창호씨의 얘기를 담은 악극을 국립극장에 올렸다. 칭찬은 많이 들었지만 재정적으로 곤궁했다. 경기지사이던 김 위원장이 공연을 보고 ‘나라가 할 일을 선생님이 하고 있다’며 경기도의 큰 극장에서 공연하게 해줬다. 그 덕에 적자도 메우고 아내에게 핀잔도 안 듣고….(웃음)”

  -개인적 인연 말고 다른 이유는 없나.

 “세상엔 정치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도 있고 문화도 있는데 정치인들은 못 본다. 혁신을 위해선 정치인이 못 보는 부분을 지적해 줘야 한다. 나는 줄곧 정치인을 ‘이념의 무임승차자’라고 평해 왔다. 이념을 못 내세우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들러리만 서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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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개방경선) 등은 정치인이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나도 분명히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포퓰리즘 방지다.”

 그는 포퓰리즘이란 말을 하곤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뜨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에 대한 열광도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이어 “원래 개혁은 정치인에게 표가 안 된다. 그래서 개혁에 한계가 있고 결국 포퓰리즘으로 흐른다”고 주장했다.

 “포퓰리즘은 목소리 큰 기득권 세력만 이롭게 할 위험이 있다.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는 개헌도 반대했다. “세월호특별법도 합의가 안 되는데 개헌은 어림도 없다”면서다. 대화 도중 몇몇 정치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다음은 그의 평이다.

 ▶박근혜 대통령=소신과 용기는 대단하지만 전략이 부족하다. 담뱃값 문제를 같이 꺼내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김무성 대표= 그릇이 크고 정치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신의도 강한 것 같은데 피케티를 높이 평가하는 건 위험하다.

 ▶김문수 위원장=전형적인 보병 스타일이다. 존경할 만한 인품에 성실하지만 스타성이 부족하다. 기업가가 더 잘 어울린다.

 ▶박원순 서울시장=똑똑하다. 그러나 시민운동가 출신이어서 한 가지 이슈에만 매달리는 한계가 있다.

 그에게 “혁신위원을 계기로 정치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왜 항암치료를 안 받는 줄 아느냐”고 되물었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했다.

 ◆홍준표·원희룡, 혁신위 자문위원=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나경원 의원과 복거일씨, 문진국 전 한국노총 위원장, 김영용 전남대 교수, 서경교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장, 송정희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 김정미 베트올㈜ 대표 등 7명을 혁신위원에 임명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는 논란 끝에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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