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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양해는 구하는 게 어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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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살면서 직장 동료나 이웃,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종종 있다. 반대로 “사죄와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양해를 바라는 순간도 많다. 선로 신호기에 이상이 생겨 기차가 연착됐을 때 승객들에게 승무원이 안내방송을 통해, 주문한 물량의 배송이 지연되고 있을 때 고객들에게 인터넷 쇼핑몰 측이 홈페이지를 통해 사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흔히 하는 말이다.

 최대한 예의를 차린 표현 같지만 “사죄와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처럼 얘기하는 것은 어색하다. 사죄는 하는 것이고 양해는 청하는 것이므로 “사죄를 드리고 양해를 구합니다!”와 같이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양해(諒解)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양해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게 내 사정을 좀 봐달라, 내 형편을 좀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이므로 ‘양해를 구하다’ ‘양해를 바라다’ ‘양해를 얻다’ 등처럼 사용해야 된다.

 “고객님, 탈색 등 섬유 손상이 우려돼 얼룩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음을 양해 드립니다” “상품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매장을 방문하신 고객님께 양해를 드립니다”와 같이 표현하는 것은 삼간다. 이때의 ‘양해(를) 드립니다’는 주객이 전도된 말이다. 얘기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양해한다는 뜻이 돼 버려서다. 상대에게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 받아 달라는 뜻을 전달하고자 할 때는 ‘양해(를) 구합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표현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가 피해를 보는 입장이라면 ‘-하다’를 붙여 ‘양해하겠습니다’ ‘양해해 드리겠습니다’고 대답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역시 부자연스럽다.

 ‘양해’는 ‘이해(理解)’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다. ‘이해를 바랍니다’나 ‘이해를 구합니다’는 자연스럽지만 ‘이해를 드립니다’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해의 말씀을 드립니다’도 잘못된 표현이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처럼 써야 하듯이 ‘양해’도 마찬가지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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