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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필리버스터 본산 미 상원의 독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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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논설위원

“나 미국 상원이오. 소속 의원이 100명밖에 안 되지만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행정부 견제 권한을 가진 입법기관일 게요. 하원(435명)이 내 형제지만 힘은 비교가 안 된다오. 조약 비준권이나 대통령의 행정·사법부 지명자 인준권은 내게만 있소. 한국 국회선진화법에 들어 있는 필리버스터(Filibuster·의사진행 방해)의 본산도 우리가 아니겠소. 필리버스터는 복잡하지만 어려울 것 하나도 없소. 그 있잖소,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법안 표결을 막기 위해 장장 8시간이나 연설하는 78세 상원의원을 연상하면 될게요. 필리버스터는 딱히 규정이 없다오. 주제나 시간에 제한이 없을 수밖에요. 대단한 특권이지요. 한 의원의 필리버스터의 실제 최고 기록은 1957년의 24시간18분이라오. 소수당의 행정부·다수당 견제 수단으로 이만 한 것이 어디 있겠소. 상원의원 소수가 몽니를 부리면 법안 표결은 그만큼 지연되고 회기 내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니 말이오. 소수·다수당의 균형추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지요.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우리의 필리버스터 종결 정족수가 한국 국회선진화법과 같더군요. 한국도 5분의 3이더군요. 세계에서 드문 의사 정족수인 만큼 한국이 우리를 벤치마킹한 듯싶소. 선진화법은 필리버스터 종결만 아니라 쟁점 법안 본회의 가결 정족수도 재적 5분의 3으로 했으니 소수당으로선 이중의 방패막이를 갖고 있는 셈이구려. 우리는 필리버스터 종결에 출석 의원 5분의 3의 찬성을 필요로 하지만(의사규칙 22조) 법안 등 표결은 단순 과반이라오. 선진화법의 5분의 3 요건도 우리보다 센 재적 의원을 기준으로 했더군요. 우리보다 타협의 정치를 더 강조하는 국회가 나온 데 대해 솔직히 놀라울 따름이오. 한국은 국회청문회법도 시행하고 있다지요? 귤이 태평양을 건너 탱자가 안 되길 바랄 뿐이오.

 그런데 그새 우리의 필리버스터 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소. 지난해 11월 대통령 지명 연방 판사와 행정부 인사 인준에 대한 필리버스터 종결 정족수가 5분의 3에서 단순 과반으로 수월해졌죠. 다수당인 민주당이 의사규칙의 새로운 전례(precedent)를 만들었지요. 우리한테 전례는 곧 지켜야 할 제도라오. 필리버스터의 철옹성 일각이 무너진 셈이지요. 대법관 인준과 법안 표결을 둘러싼 필리버스터 종결은 여전히 5분의 3 규정을 적용받지만 말이오. 소수당인 공화당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보복을 공언했어요. 대결 정치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지요.

 사실 우리의 필리버스터 제도는 지금 도마에 올라 있소. 소수당 배려의 대명사, 타협 정치의 안전판에서 거부 정치(vetocracy)의 축으로 전락했다고들 야단이에요. 재정 건전화, 이민, 총기 규제를 놓고 민주·공화당이 양극으로 치달으면서 더욱 그러하오. 남북전쟁 이래 이런 당파주의는 없었지요. 일본에서 중·참의원의 다수당 역전으로 법안 성립이 어려워 총리가 1년 새 한 번꼴로 바뀔 당시에 나온 그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가 워싱턴의 현실이란 말이오. 실제 우리 의회의 성적은 초라하오. 의회 직무에 대한 지지도가 14%에 불과하오(갤럽 9월 조사). 지난 2년간(113대 의회) 법안 성립 건수도 165건으로 지난 60년 동안 최저라오. 한국 국회도 우리와 같은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세월호 참사 이후 법안 처리가 0건이라고 하던데 말이오.

 민주주의는 절차라지요. 절차의 정당성이 대의제의 조건이지요. 그러나 벽이 높은 입법 절차는 동서 관계없이 정치의 본령을 위협하는 것 같군요. 새 정책과 제도도 결국 입법이라는 종착역에 이르러야 하니까요. 우리는 11월에 의회 선거가 있지만 한국은 2년 후라지요. 입법의 골든타임일 텐데 여야 대타협이나 국회선진화법의 손질이 이뤄질지 지켜봐야겠군요. 그냥 허송세월하다 결정할 수 있는 정치의 답을 2년 후의 투표함 속에서 찾는다면 한국 정치의 비극이 되겠지요. 격동의 정세 속에서 한국이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라면 대통령이 더 많이 소수당에 귀를 기울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밖에 없겠군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말이죠. 우리가 한국 정치와 동병상련인 줄은 정말 몰랐소.”

오영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