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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피케티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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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마르크스보다 크다”(Bigger than Marx)는 평가까지 받은 토마 피케티(사진) 파리경제대 교수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두 학자는 소득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자본주의의 ‘민주적 통제’를 통한 개선 가능성에 대해 폭넓게 토론했다. 피케티 교수는 복지와 증세 논쟁으로 뜨거운 한국 사회를 향해 “불평등이 서유럽·일본보다 심하다”며 “누진세 부과가 더 낫다”고 충고했다.

자본 축적에 대한 과감한 분석과 신선한 대안 제시로 전 세계에 ‘피케티 현상’을 불러온 토마 피케티(왼쪽). 20일 오후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 수와 나눈 대담에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서유럽과 일본보다 심화된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한국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강정현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불평등 논쟁’의 불을 지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한국에도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12일 서점에 나온 『21세기 자본』(글항아리) 한국어판은 출간 10일 만에 여러 서점 베스트셀러 집계 10위권 안에 오르며 3만 부가 팔려나갔다. 20여 개 국가의 300년에 걸친 경제 지표와 소득 자료를 15년에 걸쳐 분석해 불평등의 원천을 파헤친 피케티는 자본수익률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 증가보다 빠르기 때문에, 즉 돈이 돈을 버는 구조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갈파했다. 19일 ‘세계지식포럼’과 20일 연세대 강연회 등으로 짧은 방한 일정에 쫓기는 피케티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만났다. ‘피케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민하는 독자의 입장을 대변한 송 교수의 다양한 질문에 피케티는 성실한 답변으로 2시간 가까운 대담을 즐겼다.

송호근(이하 송) :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한다. 첫 방한인데 인상이 어떠신지.

 토마 피케티(이하 피) : 세계에서 중요한 경제성장 성공 스토리를 갖고 있는 한국에 오게 되어 기쁘다. 한국에선 최근 내 책 『21세기 자본』의 화두인 불평등 관련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알고 있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한 국가의 성장실적(growth performance)은 영구히 지속될 수는 없는데, 한국에 와서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과 직접 토론해보고 싶었다. 아시아 국가 중 내 책의 자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첫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제일 빨리 번역본을 내준 한국 출판사에 감사한다(웃음).

 송 : 한국이 얼리어답터라는 이미지가 있긴 하다.

 피 : 맞다. 진짜 빠른 것 같다.

 송 : 한국에 와보니 빠르게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는지.

 피 : 서울에 와서 보니 공사 현장이 많고 사람들의 활력도 느껴진다. 인상적인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송 : 상당히 어린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됐다.

 피 : 스물두 살이었는데 그땐 그냥 애기(baby)였다. 경제학 박사는 숫자를 많이 다루고 수식을 증명하면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의 방증이 아닐까. 경제학 박사를 받았어도 경제학에 대해선 잘 몰랐던 것 같다. MIT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프랑스에 돌아와 파리경제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오히려 경제학과 역사경제학·응용경제학에 대해 많이 배웠다. 수식을 증명하는 건 어렸을 때도 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송 : 천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나(웃음).

 피 : 천재라니, 그렇지 않다. 내가 해 온 건 데이터를 취합한 것뿐이다. 경제학자들에겐 너무 역사학적 접근이고 역사학자들에겐 너무 경제학적 접근이어서 예전엔 시도되지 않았던 것뿐이다.

 송 : 프랑스로 돌아와 역사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

 피 : 프랑스에선 역사학자·사회학자와 더 가깝게 작업할 수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등을 거쳐 면면히 이어진 프랑스 사회과학계의 전통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개인적 이유도 있었다. 미국에서 계속 살 정도로 미국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파리에서 기르고 싶었다.

 송 : 책에서 언급한 미국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같은 비판적 생각을 갖고 있나.

 피 : 미국 경제학계에도 좋은 친구가 많고 그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미국 주류 경제학자들이 너무 자신만만하고(self-confident), 자기중심적(self-centered)이어서 역사학·사회학·언론학 등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들이 자신들처럼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나는 이 점이 상당히 미성숙하다고 본다. 경제학자들은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경제 현안들에 대해 자신들이 아는 것이 많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데이터를 수집해 연구하면서 경제 현안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만 조금씩이나마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송 : 2009년 금융위기를 보면 경제학이 21세기 자본주의 발전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피 : 규제완화(deregulation)의 도가 지나쳤던 게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고 본다. 규제완화가 아시아·유럽·북미의 경제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중산층·부유층 사이의 자본수익률 간의 불평등도 심화시켰다.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룬 부분이다.

 송 :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다. 『21세기 자본』이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데, 저자로서는 왜 그렇다고 보나.

 피 :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데 이 책이 그런 경향과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내가 이 책을 쓰면서 쉽게 읽히고 접근이 용이한 책을 쓰려고 노력한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소득이나 금융 문제가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경제학적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고, 그래서 돈과 사회계급과 통계에 관련한 많은 스토리를 녹이려고 했다. 독자들도 그 점을 알아준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송 : 바로 그런 의도로 소설을 많이 인용했는데, 평소에도 소설을 많이 읽나.

 피 : 그렇다. 소설 읽는 걸 좋아한다. 문학·영화는 사회 계급 간 경쟁과 관계가 부와 소득을 둘러싼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19세기 소설을 봐도 상속이란 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이 무도회에서 누구에게 말을 걸고 누구와 춤을 추는지, 누구와 결혼하는지 등 다양한 사회계급적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돈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람들의 인생에 매우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송 : 발자크가 리얼리즘 작가로서 19세기의 현상을 상세히, 심지어 월급 수준까지 그려냈기 때문에 충분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보면 앞으로 21세기의 자본주의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내리는 듯한데, 왜 그런가.

 피 : 사실 난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내 책을 읽고 비관주의적 전망을 갖게 된다면 슬픈 일이다(웃음). 책을 쓰며 알게 된 것은 경제성장률이 5% 수준으로 영구히 지속되지 않으며, 1%대로 떨어질 경우 과거에 축적한 부가 더 큰 힘을 갖게 되고 결국엔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가 새로운 규범(norm)으로 도래한다는 것이다. 세습자본주의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 과제로서 부의 재분배에 대한 올바른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송 : 자본을 정치가 통제했던 20세기 후반엔 성장률은 오르고 불평등이 떨어졌지만 21세기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비관적이다. 시장의 힘에 모든 걸 맡기면 자본소득이 계속 증가하고 결국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피 : 시장의 힘에만 맡기면 과도한 불평등이 초래될 수 있다. 불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그러나 과도한 불평등은 성장에도 악영향을 주며 과도한 부의 집중은 민주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강력한 민주주의, 투명한 소득과 부의 동학으로서 시장자본주의가 모두에게 득이 되는 공공이익의 관점으로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주장의 핵심이다.

 송 : 책에서는 1700년대부터 약 30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런데 책 제목에도 영향을 준 고전인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 내부의 동학을 분석한 반면 피케티 교수의 책은 그렇지 않은데.

 피 : 책을 더 길게 썼어야 했던 것 같다(웃음). 어떤 면에서 그리 느끼셨는지 궁금하다.

 송 : 예를 들면 마르크스는 자본 내부에 잠재된 잉여가치로 본질을 규명했는데, 피케티 교수는 단지 수익률, 성장률 추이에 중점을 두었다. 현상적 접근이다. 마르크스의 미래 전망이 맞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계급·국가 등 자본주의의 동학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피케티 교수는 자본 수익률의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전쟁과 소득세에 집중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 :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은 모두 복합적인 사회적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r(자본수익률)>g(성장률)는 이 책에서 내가 다루려고 했던 많은 복합적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수익률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이나 한 국가의 식민지화, 외국 투자 자본의 흐름 등 다양한 정치적 갈등이 있다.

 송 :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 책에서 주장하셨는데, 사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충돌은 사회과학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피케티 교수 본인께서는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나.

 피 :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민주적 금융기관과 강력한 교육기관, 그리고 소득과 부의 투명성을 가진다면 가능하다. 그를 위한 소득세와 부유세의 누진세는 단순한 조세가 아니라 소득과 부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부유세를 누진세로 부과한다면 낮은 세율이라고 하더라도, 저소득층부터 중산층, 그리고 부유층까지 포함한 모든 사회계급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민주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통해 모든 사회계급이 이득을 얻게 조세균형 정책을 변화시킬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송 :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성공한 경우는 유럽의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역시 기업세 75%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철회했다. 프랑스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더 어렵지 않을까.

 피 : 올랑드 대통령의 실패는 유럽식 민주주의의 실패다. 유로존, 특히 프랑스의 실패는 단일통화를 도입했으면서도 금융 및 예산 정책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민주적 장치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일통화 정책은 단일 조세 정책을 펴는 정부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럽중앙은행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유럽 상황은 아주 엉망이다.

 송 : 정치사회학에선 평등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거꾸로 민주사회가 불평등을 제어할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즉, 불평등이 독립변수이고, 민주주의가 종속변수다. 그런데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내세웠다.

 피 :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기능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책에도 제1차 세계대전(1914~18) 이전의 유럽 국가 사례를 다뤘는데, 당시 유럽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극도로 높은 수준의 불평등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에 엘리트층과 부유층이 소득세를 걷는 데 동의했고 1918년 여름 소득세가 도입됐다. 그 전에 도입이 되어 교육제도 개선 등에 사용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다. 전쟁이라는 큰 위기를 겪은 후에야 소득세가 도입이 된 셈이다.

 송 : 전쟁이나 국가위기 발생 경우엔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겠다.

 피 : 맞는 말씀이지만 전쟁 없이도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역사의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 소득과 부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불평등이 과도한 수준으로 가지 않도록 통제하기 위해 선제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

송 : 독자를 위해 피케티 교수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300여 년의 데이터를 분석하니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는 것이고 자본소득이 제1, 2차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고는 증대되어 왔으며 현재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이다. r>g라는 발견을 해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피 : 굉장히 기뻤다. 데이터 분석은 지난한 작업이지만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은 보람차다. 새로운 분석 방식이었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공식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송 : r>g를 분석함에 있어서 전쟁이나 조세정책 등의 요소가 주로 등장하는데 그 이외에도 다양한 다른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비판이 많다.

 피 : 크고 작은 많은 요소가 있을 수 있고 선거나 소비에트연방의 몰락과 같은 정치적 요소와 변수가 금융의 진화에도 영향을 줬다. 최근의 금융위기도 정치적 요소가 있다. 나는 결정론적이거나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믿지 않으며 이런 모든 진화는 각국의 정치적 선택과 역사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송 : 한국의 경우 인구성장률이 최저 수준이고, 앞으로 극한 저성장 시대로 진입할 텐데, 피케티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자본소득이 증가할 것이고 불평등은 심화하게 된다.

 피 : 인구증가 침체율이 상속세에 매우 큰 영향을 주며 따라서 불평등도 심화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유럽의 낮은 인구성장률은 따라서 발자크의 19세기 때보다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송 : 프랑스의 경우는 어떤가.

 피 : 인구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과는 달리 프랑스의 인구는 상대적으로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도 상속으로 인한 수익이 노동수익을 이미 앞섰다. 60~70년대에 파리에서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노동수익만으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상속받은 부가 없다면 매우 어렵다.

 송 : 한국은 그런 터널로 이미 진입했다. 프랑스가 좀 낫다면 이민·출산율 관련 국가 정책도 좋은 영향을 줬을 듯한데.

 피 : 이민은 유럽 기타 국가에도 있고, 중요한 건 출산율이다. 프랑스 출산율은 여성 1인당 2.0 정도인데 독일 등의 경우는 1.5 이하로 한국(1.19)과 비슷하다. 출산이라는 것은 개인별로 복잡한 결정이다. 성평등 정책을 펴는 것, 특히 여성을 위한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을 펴는 것이 열쇠다. 만약 여성이 아이를 기르기 위해 집에 있어야 한다고 압박을 받는다면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송 : 경제성장률이 20세기 후반 2.5% 수준에서 21세기에선 더욱 떨어질 것이고 이런 저성장이 지속되면 불평등이 심화될 거라는 것이 골자인데, 저성장 진입의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피 :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인구성장 침체다. 지난 300년간 데이터를 분석해볼 때 역사적으로 GDP 성장은 인구성장과 연동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이 기간 동안 약 10배 성장했고 GDP도 이에 따라 증가했다. 그러나 유엔 등의 자료에 기반해 볼 때 앞으로 300년간 이런 식의 인구증가는 없을 거라 예측한다. 21세기에는 인구성장률이 0%에 가까울 것이다. 둘째 요인은 1인당 국민소득 증가와 생산성 증가다. 세계대전 이후 독일·프랑스·일본 등의 성장률은 50~70년대 5%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쟁 당시 낮은 성장률을 만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 역시 60년대부터 경제가 급성장했고 중국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중국의 이런 성장세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생산성도 당분간은 높아질 거라고 본다.”

 송 : 한국의 경우를 말씀하셨는데 전 세계 경제성장률 1.5%보다 높은 약 3.5% 수준이었다. 최근 한국 일부 경제학자는 한국의 경우 경제성장이 자본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에 피케티 교수의 주장을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한다. 이런 한국의 실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피 : 한국은 경제성장 성공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그 수준의 경제성장률이 영구히 지속되리라고 볼 수는 없다. 이미 한국은 꽤 부를 축적했고 일본과 서유럽의 75% 수준이라 볼 수 있는데 앞으로 5~10년만 지나면 한국은 일본·서유럽 GDP 수준을 따라잡을 것이고,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해서 앞으로 한국에도 자본수익률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중국처럼 급성장하는 국가에서도 불평등 문제를 민주적이고 투명한 장치와 정책으로 제어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필요하다면 한국도 조세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

 송 : 한국에서 경제성장률은 비교적 높지만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을 앞지르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자본소득과 국민소득 비율인 베타의 수준이 미국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는데, 한국은 소득세가 20%이고 기업세가 28%가량 된다. 그러나 증세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이 상당히 큰데.

 피 : 우선 책에서 한국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나와 있는데 이를 보면 불평등 측정 문제에 대해 한국사회도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의 총 세수를 GDP로 나누어 보면 30% 이하로, 이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스웨덴·덴마크의 경우는 50%이고 이 국가들은 생산성 역시 최고 수준이다. 한국도 바로 50%로 높여야 한다는 건 아니고 국가의 조세 정책이란 건 복합적 판단을 요하는 것이지만 한국이 만약 세수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예를 들어 공교육에 투자한다면 한국처럼 사교육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에선 장기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송 : 결국 복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일부 복지학자의 주장과는 달리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피 : 돈을 어디에 쓰는지에 달려 있다. 교육·복지에 투자를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 있다. 한국이 경제성장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평등주의에 입각한 토지 분배 덕분 아닌가 한다. 21세기에는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원하고 그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할 때다.

 송 : 그러나 미국의 경우 60년대 ‘빈곤과의 전쟁’ 이후 교육 투자를 많이 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80년대 연구들은 미국의 교육정책이 불평등 완화 효과가 없다는 결론, 즉 ‘근거상실(Losing Ground)’로 판정했다.

 피 : 맞는 지적이다.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 심화요인 중 하나는 공공교육 부문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상위 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아래 수준의 대학은 그렇지 못해 편차가 크고, 이 점이 미국 사회 불평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송 : 한국의 강점인 정보통신기술에 집중하는 게 경제성장을 위한 자연스러운 방향이라는 데 동의하는지.

 피 : 한국의 개발 정책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내 딸도 삼성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한국의 강점이 정보통신기술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한 분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

 송 : 시장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케인스주의자인가.

 피 : 꼭 그렇지는 않다. 케인스를 존경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난 사실 시장과 사적재산의 기능을 믿는다. 시장의 힘과 경쟁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단지 이런 시장의 힘이 민주적 장치에 의해 제어되어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송 : 제어를 위해 고율의 징벌세를 매기면 성장 둔화로 이어져 불평등이 결국 심화된다는 게 일반적 우려인데.

 피 : 최고경영자에게 1000만 달러의 연봉을 주는 게 과연 유용한가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고위 경영자에게 고액 연봉을 준다고 해서 일자리 창출 등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못 찾았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고액 연봉을 주는 것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그렇지 않다. 비율의 문제다. 역사적 경험치로 봐도 미국의 경우 성장률은 세율이 70~90%에 달했던 50~60년대에 더 높았다. 레이건 정부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썩 좋지 않았다.

 송 : 피케티 교수는 ‘보호주의’가 맞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보호주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거 아닌가.

 피 : 난 사실 자유무역 신봉자다. 난 보호주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보호주의는 높은 성장률을 가져오지 않는다. 단 아무런 규제 없는 자유무역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송 : 한국에선 최상위계층에 대한 한계소득세율이 서서히 하락해왔다. 최근엔 한국 정부가 간접세인 담뱃세·주민세·자동차세 등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피 : 담배나 주류 소비에 대한 간접세의 문제는 주요 소비 계층인 중산층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데 있다. 국민소득에서 최상위 소득 수준의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소득과 부에 대한 누진세 부과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최상위계층 소득세율과 관련해선 한국의 경우는 조금 지나치지 않은가 한다. 그것 때문에 한국의 불평등이 서유럽·일본보다 더 심화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송 : 세습자본주의가 영향력을 확대하면 청년세대에게 미래는 없다. 당신은 이를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라스티냐크 딜레마’로 논하는데, 한국의 현재 청년실업과 고령 빈곤층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피 : 발자크 시대보다는 소득수준이나 계급 간 이동의 용이성에 있어서 상황이 개선됐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 고성장 시대와는 달리 부의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지금 조세 정책을 펴야 할 때가 도래했다. 노동소득 세율을 축적된 부에 대한 세율보다 낮추는 조치가 취해져야 할 때다.

 송 : 짧은 방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진지한 논의를 해줘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중앙일보 독자와 JTBC 시청자께 한 말씀 부탁한다.

 피 : 좋은 질문 감사하다. 한국에 대해 앞으로 더 연구하고 싶다. 세계 각국은 서로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한국인들이 국제적 관점에서 불평등 심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른 국가들이 걸어온 길에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다.

서울대 교수·사회학 정리=전수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

1971년 프랑스 클리시 출생.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과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부의 재분배 논문으로 박사 학위. 93년부터 미국 MIT대에서 경제학 강의. 95년 프랑스로 돌아와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낸 뒤 2000년부터 파리 경제대 교수로 재직. 『21세기 자본』을 펴내며 단번에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올랐고, 『유럽을 구제할 수 있는가』와 공저로 『세제 혁명을 위하여』 『20세기의 최상위 소득』 등을 펴냈다. 2013년 유럽 경제 연구에 기여한 45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이리에 얀손’상 수상.

[인터뷰 후기] 친근한 미소의 프랑스 경제학자는 열정이 넘쳤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 거기에 친근한 미소까지 갖춘 토마 피케티 교수는 필자의 사회과학적 질문과 반론에 열심히 응했다. 지난 20일 오후, 800여 명이 운집한 연세대 강연을 막 끝내고 돌아온 길이었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젊은 열정이 풍겼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독일적이라면, 그의 『21세기 자본』은 프랑스적이다. 마르크스는 자본 비대화의 내부 메커니즘을 잉여가치로 풀었다. 피케티는 원인 규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17세기 이후 300년 동안 자본소득의 변동 추이를 실증자료를 통해 밝혔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세기적 발견’이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앞질렀다는 것, 소수에 집중된 자본소득을 제어하지 않으면 불평등이 참을 수 없이 커지고 ‘세습자본주의’에 갇힌다는 사실과 경고가 그것이다.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그의 해법이었다. 민간자본의 시대에 글로벌 자본세, 누진적 소득세를 도입하지 않으면 극한 불평등이 만연했던 ‘과거의 질서가 미래를 먹어치운다’고 했다. 이른바 ‘사회적 국가’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민주주의와 불평등의 변화무쌍한 관계는 이미 사회학·정치학 연구로 밝혀진 바다. 그의 처방은 여기서 그쳤는데, 불평등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한국은 조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일침을 놨다. 유럽적 발상이다. 불평등의 가장 중대한 주범인 저성장과 인구 감소가 만연한 한국, 어찌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