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급물살] 정치권 '몸통' 겨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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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소문이 꼬리를 문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사건'수사가 본궤도에 들어선 듯하다.

대주주인 보성그룹 김호준 전 회장이 로비 표적으로 삼았던 정치인들이 관련자들 입에서 실명으로 거론되면서 의혹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날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염동연씨가 1999년 金전회장에게서 2억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최근 확인되고도 더 큰 '몸통'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있었다. 두 사람이 당시 그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金전회장이 정말로 정치권에 거액을 뿌렸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지만 검찰은 최소한 그가 로비를 시도한 건 분명하다고 본다. 최근 나라종금 전직 임원에게서 "金전회장이 '정치권 인사들에게 돈을 줬는데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고 얘기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종금 관계자로부터 거명된 민주당 한광옥 최고위원 등 정치인들은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에 펄쩍 뛰고 있다.

韓최고위원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金전회장과 고교동문인 것은 사실이나 99년 구로을 재선거나 나라종금과 관련해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 법적 대응하겠다"고 강력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건을 예의 주시 중인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민주당 S의원 등 또 다른 정치인의 이름도 새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지난해 공적자금 수사팀이 나라종금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거명되는 정치권 인사들의 의혹이 지난해 수사 때도 제기됐지만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검찰은 "유은상 전 보성그룹 부사장이 외국으로 도피해 정.관계 로비 부분은 확인이 어려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劉부사장이 99년 5월 보성그룹을 떠난 만큼 金전회장이 99년 7~9월 安.廉씨에게 돈을 준 것이나 99년 말과 2000년 초 나라종금의 퇴출 저지 로비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선 외압 의혹도 제기된다. 2001년 말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 비리로 안상태 나라종금 전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자 민주당 박주선 의원이 安전사장의 관련 내용을 수사팀에 문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朴의원은 "중학교 선배인 安전사장이 고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한번 했을 뿐 수사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검찰은 다음주 소환이 예정된 安.廉씨에 대해 상당한 추궁거리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廉씨에 대해서는 98~99년 수자원공사 감사 시절 공사 돈을 나라종금에 예금하는 대가로 일부 금품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

또 廉씨가 수자원공사 감사에서 물러난 99년 9월 金전회장에게서 받은 5천만원의 명목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검찰은 安씨가 金전회장으로부터 사업 관련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았을 경우 알선수재 혐의를, 투자금 명목으로 받은 돈을 정치권 등 다른 곳에 썼다면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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