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붕괴 위험에도 오갈 데 없는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광주광역시 중흥동 평화맨션 지하 1층의 기둥 벽체가 갈라진 균열 현상을 전문가들이 살펴보고 있다. 이 아파트 주민 140여 명은 지난 7월부터 인근 초등학교·친척집 등에서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평화맨션 전경. [프리랜서 오종찬]

붕괴 위험이 있는 노후 부실 아파트에 긴급 대피명령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주비용, 재건축 여부 등을 놓고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전북 익산시 모현동 우남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17일 “지자체의 무분별한 행정조치로 재산권 행사는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며 “익산시가 대피 명령을 철회하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내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11일 익산시가 “건물 붕괴 위험이 높다”며 우남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내린 긴급대피 명령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우남아파트는 15층 단일 건물로 103세대에 350여명이 살고 있다. 1992년 준공된 아파트는 입주 직후부터 부실시공 의혹이 제기돼 주민들이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10여 년 만에 7억4000여 만원의 배상금을 받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배상금 대부분을 소송비용으로 쓴 탓에 보강이나 재건축 등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다.

 익산시는 아파트 내·외벽에 균열, 침식 등의 현상이 나타나자 지난 8월 전문가 TF팀을 구성해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오른쪽 라인 25세대는 E등급이며, 나머지 부분은 D등급이라 이대로 방치하면 붕괴 위험성이 높다’는 판정을 내렸다. 안전도 D등급은 해당 건물 사용이 제한되고 긴급 보수·보강작업을 해야 한다. E등급은 개축이 불가능해 건물 사용이 아예 금지된다. 이에 익산시는 주민들에게 긴급대피 명령을 내리고, 임차비 최대 3000만원 융자와 이사비 120만원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안전진단이 10여 년 전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라 지자체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한 세대도 이주를 하지 않고 있다. 주민 정춘만(58)씨는 “건물 곳곳이 갈라지고 금이 가 불안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주할 만한 돈이 없는 세대가 대부분”이라며 “주민 70%가 이사보다는 아파트 보수·보강 작업을 원하는 만큼 대피 명령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 평화맨션(B동) 주민들도 지난 7월 긴급대피했다. 30여 년 전 건립한 아파트 지하층 기둥의 벽체가 갈라지는 균열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60세대 142명의 주민들은 이후 두달간 인근 초등학교·친척집 등에서 대피생활을 해왔다. 이중 22가구는 자녀들의 개학에 맞춰 LH와 도시공사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상태다.

 소방 당국의 정밀 안전진단 결과, 평화맨션의 B동은 물론이고 A동 역시 즉각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E등급으로 평가됐다. A동까지 포함해 172세대 430여 명이 모두 이주를 해야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지자체와 입주민들은 이 아파트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특별재난지역은 대형사고나 자연재해가 발생, 정부 차원의 사고 수습이 필요한 지역에 선포된다. 평화맨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주민들의 보금자리가 갑작스럽게 내려앉아 오갈 데 없어진 만큼 재난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호·권철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