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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0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 73인은 지금] '투쟁의 머리띠'는 '삶의 넥타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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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투사에서 평범한 생활인으로-'. 서울 미 문화원 점거농성자 73명의 지난 20년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85년 이후 노동.농민.통일운동 등에 투신하면서 '투사'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주동자로 구속됐던 4학년생들은 위장취업한 공장에서 노조를 조직하고, 빈민운동과 반미운동을 하다 또다시 옥살이를 하는 등 평탄치 않은 인생 역정을 겪었다. 점거 당시 서울대 조직책을 맡은 혐의로 구속됐던 홍성영(42.스마텍 엔지니어링 대표)씨는 "사회운동에 투신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말했다.

단기형이나 구류 등으로 풀려난 2, 3학년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 3학년이었던 박재영(41.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씨는 인천 노동자대학 설립에 참가했다가 90년 구속됐고, 연세대 출신 강상민(40.컴퓨터 프로그래머)씨는 군내 운동 조직인 '애국군인'을 지원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미 문화원 점거 이후 운동 현장을 지켰던 주역들은 90년대 초 운동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80년대 운동권의 이상이었던 사회주의가 무너진 데다 노동운동이 노동자 중심의 조직을 갖춰 학생운동 출신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이 붉은 머리띠 대신 넥타이를 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독재 타도'와 '미국 반대'를 외쳤던 이들은 현재 회사원.자영업자.정치인 등으로 각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운동 딱지'가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이 될 것을 걱정해 대기업이나 공무원 공채 시험에 응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건 이후 경기지역에서 노조운동을 했던 이치선(41.변호사)씨는 92년 운동을 접은 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점거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핵심 배후 인물로 지목돼 구속됐던 연세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의 박선원(42)씨는 영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 강단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대미 관련 업무와 북핵 문제 실무를 맡고 있다.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이었던 이정훈(42)씨는 99년 인기 영어교재의 저자가 된 뒤 출판사업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 사무처장으로 일하는 이강백(42)씨와 민주노동당 정책위 부의장 윤영상(41)씨 등은 한때 서울 강남지역 학원가에서 '족집게 강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박춘원(41)씨는 군 제대 후 한국과 미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땄다. 가담자 대부분이 미국 정부로부터 '위험인물'로 분류돼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없는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점거 당시 고려대 주동자로 구속됐던 신정훈 나주시장은 올해 초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역혁신 성공사례 해외연수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당시 신 시장에게 10년짜리 비자를 발급했던 미 대사관 측은 최근 '행정 착오로 잘못 발급된 비자를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점거 직후 아예 학교를 그만둔 사람들도 있었다. 오태헌(41)씨는 학교를 자퇴한 뒤 요리사로 일하다 98년 출가했다. 법명은 중현. 서진식(41)씨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 마산으로 내려가 20년째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치과의사로 활동하던 윤왕희씨는 2002년 강도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원진희.장영승씨 등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투병 중이다.

?어떻게 취재했나=지난 3월부터 전국에 흩어져 있는 73명의 소재지 파악에 들어갔다. 우선 각 대학 동문회 등을 통해 주소.직장.전화번호를 확보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기록이 현재와 달랐다. 별도의 정기적인 모임도 없었다. 일부는 옛 주소지를 역추적해 주소지를 파악했으며, 동문을 수소문해 전화번호를 찾아내 모두 58명의 근황을 알게 됐다. 주변 친구들 사이에 알려진 소문도 중요한 단서였다. 서강대 서진식씨는 고향에서 고물상을 경영한다는 동문의 전언을 근거로 경남지역 고물상 10여 곳을 뒤진 끝에 만날 수 있었다.

일부는 "지난 일을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했다. 해외에 거주하거나 투병 중이어서 인터뷰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 특별취재팀=임장혁.정강현.박성우.백일현.김호정.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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