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다이어트 집착하는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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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다이어트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50대 여성입니다. 바로 제 딸 때문입니다. 그렇게 착실하고 공부도 잘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2년 전 대학에 합격한 뒤 서울로 올라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딸을 위해 저는 올라갈 때마다 반찬거리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이 도무지 줄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디서 구했는지 포도만 가득했습니다. 딸애의 책상 위엔 다이어트 관련 책자가 서너권씩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세끼 식사를 모두 굶고 포도만 먹는다고 하더군요. 2주 만에 2㎏이나 뺐다고 자랑했습니다.

서울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딸애의 키는 1백62㎝에 몸무게는 54㎏ 정도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몸매였습니다. 그런데 딸애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엄마가 애써 준비한 음식은 하나도 먹지 않는 겁니다.

속상해서 따졌지요.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제일 싫은 게 친구들에게서 '얼굴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체중이 42㎏에 불과합니다. 기력이 없어 보이는 건 물론이고 생리도 잘 안 나온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보자고 하면 오히려 역정만 냅니다.

보내준 용돈으론 죄다 다이어트 제품을 구입한 모양입니다. 방에 가보니 큰 거울이 눈에 띄었습니다. 매일 거울 앞에서 몸매를 점검하기 위해서 샀답니다. 체중계도 세개나 있더군요.

예전엔 밥도 곧잘 해먹던 애가 지금은 변비약과 다이어트용 생식 가루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포도 다이어트에서 어느새 생식으로 종목이 바뀐 것입니다. 아침은 생식 가루 한 봉지, 점심은 강냉이 반 봉지와 블랙 커피, 저녁은 굶거나 정 배고플 땐 밥을 서너 숟가락 뜨는 정도입니다.

요즘 들어 돈 씀씀이가 헤퍼져서 따져 물었지요. 한의원에 가서 살을 빼는 경락 마사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딸애는 "시골에서 밥 잘 먹고 튼튼하게 자란 내가 서울에 와서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처음 대학에서 급우들을 만나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을 얘기하더군요. 나온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급우들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체중계의 눈금이 늘 때마다 급우나 동아리 선배들을 만날 자신이 없어진답니다.

굶어도 상관없으니 살만 빠지면 좋겠다고 합니다. '뚱뚱한 몸매로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고도 합니다. 돈이 생기면 얼굴 살을 빼는 성형수술까지 받고싶다고 말합니다. 도무지 제 딸 같지가 않습니다.

애 아빠는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딸 애는 2녀 중 장녀입니다. 비록 지방도시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 없이 딸애를 키웠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통통했지만 착실했던 딸애가 이제는 다이어트의 노예가 된 느낌입니다. 자취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오히려 저체중임을 알게 할 수 있을까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대구에서 한 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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