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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1)제75화 패션 50년(2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961년 3월에 개원한 국제복장학원이 차차 재 자리를 잡아갈 즈음 5·16혁명이 일어났다.
무기력하고 무질서하던 사회상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우리 복장에도 이러한 사회변혁의 기풍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 상류층에서는 6·25의 비참함 쯤 벌써 잊었다는 듯 제법 흥청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런 부류는 극히 일부분이었고 전국적으로는 절량농가니 보릿고개니 하는 말들이 매넌 봄마다 되풀이될 때였기에 자연 복장도「일하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 권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부유층 여성들의 사치풍조가 비난을 받으면서 신생활에 알맞은 의복간소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날마다 신문지상에는 의복간소화에 대한 각계 지도급 인사들의 의견이 좌담회와 앙케트 형식으로 커다랗게 취급되고 당시 일류 디자이너들이 고안한 신생활복 디자인이 패턴과 함께 소개되었다.
재건국민운동본부 (본부장 유달영)가 주관이 되어 그해 7월22일 동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신생활 간소복 좌담회는 양복점 대표, 직물계 대표들까지 참석하는 등 그 어느 모임보다 규모도 주고 오간 의견도 활발했다.
만날 때 인사말로 『재건합시다』가 권장되고「재건북」이니「재건 데이트」니 하는 새 유행어가 즐겨 쓰일 만큼 오랜 가난과 나태에서 벗어나려는 대대적인 국민운동이었다. 신생활복에 관한 당시의 의견들을 좌담회 기록을 통해 잠시 살펴봄도 뜻 있을 것 같다.
△서상국(남성복 디자이녀)〓이번에 전개되는 신생활복 운동은 갑신년의 의복개혁 이후 처음이므로 어디까지나 우리문화 역사에 허물이 되지 않도록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면으로 개혁을 해야합니다.
△최경자〓우리는 일정때 국민복을 입었었기 때문에 국민복이라면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이번 신생활복과 예전의 국민복과는 그 취지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값싸고 실용적 이면서도 입는 사람의 개성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어요.
△유한철 (음악평론가)〓빛깔을 단일하게 국방색이나 감색 같은 어두운 색으로 통일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어디까지나 수요자들의 의견을 들어서 명랑하고 밝은 느낌의 색을 택해야겠지요.
△김숙 (동양화가)〓단일색이나 단일 모형은 불찬성입니다. 검소하고 청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면 되지, 구태여 빛깔이나 디자인을 통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백희득 (디자이너)〓신생활복은 유니폼화 시킬 수 없습니다. 일정시대 국민복 강요로 직물업이나 복식업의 발전은 전혀 무시되었었읍니다.
단일복지, 단일모형의 신생활복이 제정된다면 국민의 개성과 선택의 자유는 물론 직물업졔와 복강문화의 발전을 막는 결과가 될것입니다.
△안성균(재건국민운동본부 운영국장)〓가격문제를 무시할 수 없는데 5만8천환 정도 월급을 받는 중류가정을 기준으로 남성용 겨울 신사복은 2만8천환 정도가 알맞고 3개월 월부가 적당할 것 같아요. 여자옷은 5천∼6천환 정도에서 만들 수 없을까요.
△서수연(디자이너)〓여름옷은 5천∼6천환 정도로 충분합니다. 외국에서는 평상복이나 작업복은 값싼 기성복을 많이 사 입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이야말로 기성복을 입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값싸고 튼튼하면서도 디자인이나 사이즈가 다양한 기성복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계속>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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