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경이 마지막 미꾸라지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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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자도 울고 싶었다.
윤노파의 예금증서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추러됐던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았고 가장 『그렇게 안되기를 바랐던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됐을 때 사건기자들은 결코 경찰 못지 않게 가슴이 찢기는 아픔에 몸을 떨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건을 따라 하루생활의 절반이상을 경찰과 함께 살아온 때문에 미운정 고운정에 절어, 무의식적으로 경찰 편을 들고싶어하는 잠재적인 동료의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동료의식이 사건기자들만의 짝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경찰을 아껴왔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흐려놓았다』고도 하고『내가 경찰관임을 아는 동네 이웃들 시선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집에 갈 수 없게됐다』는 탄식에 『8만 경찰의 가슴에 못질을 했다』는 울분도 터져 나왔다.
어찌 8만 경찰의 가슴뿐이겠는가.
21일은 바로 그 8만 경찰의 명절인 경찰의 날.
경찰은 이날을 보다 뜻깊게 하기 위해 곳곳에 아치와 현수막을 새웠고,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는 21일 자축쇼까지 벌어질 예정으로 있다.
창립 36주년의 원숙한 경지에 들어섰으니 수사권의 독립을 부여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렸었다.
꿈같은 이야기들이다.
18일 기자와 만난 하순경은『국민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앞으로 어찌 되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하순경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울부짖고만 싶었다.
무엇이 하순경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물론 자질문제였겠지만 항상 이야기되어 오던「부족한 수사인력과 장비」,「부족한 수사비」.「과중한 업무」,「바늘구멍 같은 승진 기회」.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지는 않았을까.
혹시 그런 것들이 조금이라도「하순경 개인의 자질」과 합세해 원인이 되었다면 하순경은 과연 경찰에 남아있던 마지막 미꾸라지였을까, 아니면 더 많은 미꾸라지 가운데 한 마리였을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순경 스스로『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 같은 사람이 다시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듯이 하순경은 마지막 미꾸라지여야 한다.
36주년 경찰의 날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바로 그 점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홍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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