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 『전국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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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언제부터인가 스포츠 행사에는 걸핏하면 폭력이 난무하는 등 무질서상태가 연출되고는 한다.
스포츠는 닦은 기량을 힘 것 발휘해서 승패를 가름하는 스포츠맨십이 있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거기에는 인간의 육체적 능력에다 불굴의 정신이 조화되어 미로의 경지에 끝없이 도전하는 숭고함이 있다.
직접 참가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관전 석에 앉은 사람들까지 함께 경기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스포츠가 갖는 매력이며 특징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지난 6일간 열렸던 전국체육대회는 예년과 다름없이 폭력과 난동이 판을 쳐서 우리를 슬프게 했다.
판정에 불만을 품고 체육지도자란 사람들이 심판을 구타하는가 하면 선수끼리 치고 받는 불상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기진행을 맡은 각 체육단체 임원들은 운영관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도 했고 무능력한 심판들은 선수들을 울리기도 했다.
경기장은 마치 도때기시장처럼 임원·선수·관전자들이 모여들어 무질서의 극치를 이루었다.
88년 올림픽을 유치해놓고 이제부터 모범적인 체전을 치러보자고 다짐했으나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스포츠맨십은 어디로 갔으며 민주시민의식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체육인·시민이 한데 어울려 난장판을 만들 체전이라면 차라리 열지 않은 것만 못하다.
스포츠를 통해 민주국민의 단합을 촉진하고 스포츠정신을 시민의 생활 속에 파고들게 하자는 것이 체전의 뜻이 아니었던가.
62회 전국체전은 한국스포츠의 도약을 기하는 계기가 되기는커녕 추악한 현주소만을 확인하는 결과만 남겼다.
왜 이렇게까지 체전이 멍들어야 하는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한다는 몰 스포츠맨십, 체전은 온 국민이 모여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득점경쟁 장이라는 설익은 인식이 너무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 인격조차 의심받을만한 일부 이른바 체육지도자가 아직도 얼굴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그들이 88년의 올림픽에서 주역을 맡을 청소년 선수들 앞에서 내보인 추태는 부끄럽기만 하다.
『스포츠는 참여하는데 뜻이 있다』는 스포츠 금언에는 누구나 참여하여 올바르게 승부를 겨루고, 이긴 자는 그 동안의 노력에 보답을 받되 교만하지 않으며 진자는 깨끗이 승복한 다음 내일을 기약하라는 충고가 담겨있다.
승리가 최상의 영예이긴 하나 그것이 정도에서 벗어날 때는 오히려 치욕이 되고 만다.
스포츠를 즐기다보면 넘치는 환희에 과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임원·선수·관중이 한 덩어리가 되어 광란하면 그곳은 이미 스포츠 도장이 아니다.
해마다 열리면서 규모는 커지고 있으나 그와 정비례하여 스포츠 정신이 무참하게 짓밟혀서는 체전의 의의가 반감된다.
금년의 서울대회를 거울 삼아 스포츠를 줄길 줄 아는 국민이 되어야한다.
체육지도자는 깊게 반성하고 더 세련된 스포츠행사가 진행되도록 연구를 게을리 말아야한다.
선수는 시원하게 이기고 시원하게 지는 스포츠맨십을 몸에 익히도록 기와 함께 마음도 닦아야한다.
관전자는 경기를 관리하는 쪽의 한사람임을 명심하고 응원과 난동을 구별할 줄 알아야한다.
얼룩진 전국체전이 다음날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되돌아 볼 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올림픽을 치러낼 수 있는 역량을 지금부터 키워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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