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날 괜히 낳았나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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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엄마는 나를 괜히 낳았나 봐.』
국민학교 1학년짜리 막내가 숙제하던 손을 멈추고 슬픈표정으로 말을 건네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만 너를 낳지앉았으면 큰일 날뻔 했는걸』하고 얼른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거짓말. 오늘 우리 선생님이 아들딸구별말고 둘만 낳아 길러야 된다고 했는걸.』
막내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하고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충 해 주었다.
인구가 늘어나면 나라살림이 어려워지므로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가족계획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이야기었다.
그러니까 막내는 자기가 국가시책에 어굿난, 축복받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는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너는 엄마가 날까 말까 하다가 낳았단다. 엄마한테 고맙다고 해야돼』라는 이모들의 장난기 섞인 이야기를 자주 들어온 터였다.
나는 막내의 이런 터무니 없는 고민을 어떻게하면 해결해 줄까 하고 궁리를 해 보았다.
『모르는 소리. 네가 태어날때까지는 셋만 낳아잘 기르자 였는걸. 그게 사람이 자꾸 많아 지니까 이젠 둘만낳아 잘 기르자로 변한거야.』
궁리끝에슬쩍 꾸며댄 말이 막내를 적이 안심시켜 준것 같았다.
『정말이야? 난 그걸 몰랐잖아.』
막내는 내 품에 안기며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나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듯 마음이 가벼워졌으나 그래도 대수롭지않게 들어버릴 이야기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막내가 걱정스러웠다.
한때 둘만 낳은 사람은 문화인이요, 셋을 낳은 사람은 야만인, 넷을 낳은 사람은 윈시인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때가 있었다.
아마 그것은 가족계획을 잘 실천하라는 선의의 유행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행어는 내게 약간의 저항을 느끼게 했었다.
어느날 한 직장에 근무하는 분이 내게 자녀수를 물었다.
『아들 둘, 딸 하나』라고 대답하고는「알맞게 낳았군요」라는 말을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그는 농담섞인 투로 『야만인이군요』라고 대답하는것이 아닌가.
그 유행어가 내심 걸렸으나 귀여운아들 하나 더 둔 죄로 이를 감수하기로했었다.
막내는 지금 나의 임기응변에 안심하고 평화로이 잠들고 있다.
『얘야,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 앞으로 큰일꾼이 되렴. 그때 엄마는 또한번말하지.「너를 안낳았음 큰일날뻔했지」』라고. <서울江南區盤浦本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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