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을 누르며 천천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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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간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덕에 수시로 철야 근무를 한다. 어느 학사의 숙직 자처럼 숙직실에서 자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낮 근무 때보다 더 많은 업무량이 쏟아지고 책임도 더 무거워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범죄사건이나 중대발표들이 활자로 먹칠을 하기 전에 우리에게 첫 번째 쇼크를 안겨준다. 그 자극을 소화할 틈도 없이 기사내용 중에서 제목을 솎아 내야한다.
밤새 분초를 다투며 긴장과 중압을 겪고 새벽녘에 귀가해서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나면 피로와 함께 스트레스가 온종일 내 몸을 무겁게 누른다. 하루 근무 중 몇십 번이나 시계를 쳐다 보며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느새 내 성격도 더 조급해지고 말았다.
또 불규칙적 생활리듬 때문에 가족과의 밀착도 힘들어진다.
미국의 어느 석학은 남성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외도와 음주가 가장 많다고 발표한 적이 있지만 술과 인연이 먼 탓에 그 방법은 나에겐 별로 통용이 안 된다.
기껏해야 근무 시간 중 잠깐씩 휴게실에 들러 동료들이 두는 장기훈수로 머리를 식히거나 간혹 일요일이면 온몸이 후줄근해 질 때까지 테니스를 치고 나면 모든 노폐물과 함께 스트레스도 내 몸에서 방출되는 것 같다.
내 방식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굳이 든다면 하루의 피로나 감정처리를 묵혀 두지 않고 그날로 소화시키고 고질화한 조급성을 치유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천천히 가자」 「천천히 하자」로 반추한다.
횡단도로에서 신호가 아슬아슬 해져도 다음 푸른 신호가 켜질 때까지 기다리고 종종걸음은 사양한다. 마음의 여유를 내 스스로 챙기는 길만이 현대병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손진문 <한국일보>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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