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지비 재원 마련 방안 공론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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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대대적인 지방세 인상에 나섰다. 안전행정부가 지난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주민세와 자동차세·지역자원시설세 등을 지금의 두 배까지 올리겠다는 지방세제 개편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여기다 현재 23%에 이르는 각종 지방세 감면율을 국세 감면율인 14% 수준으로 낮춰 지방세수를 늘리겠다는 복안도 내놨다. 이렇게 해서 지방세로 대략 1조4000억원쯤을 더 걷을 계획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담배에 물리는 각종 세금을 올리거나 신설해 2조8000억원을 더 걷기로 한 데 이어 증세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증세(增稅)’ 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정부의 해석에 따르면 여기서 증세란 기존 국세세목의 세율 인상만을 의미한다. 담배에 특별소비세를 신설한다든지, 지방세를 올리는 것은 증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세금을 더 낸다면 그것이 곧 증세다. 문제는 증세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내세워 편법으로 이런저런 세금을 찔끔찔끔 더 걷는 식으로는 늘어난 복지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증세 없는 세수 확충’이란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원 마련 구상은 첫해부터 어긋났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각종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세수를 늘리겠다고 했으나 실제 징수액은 지난해 목표액(270조원)보다 15조원이나 모자랐다. 올해도 10조원 이상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 판에 지난해부터 무상보육비가 지급되기 시작했고 올해는 기초연금이 새로 도입돼 복지지출 소요는 세수와 관계없이 또박또박 늘어나고 있다. 그러자 재정 기반이 취약한 지방정부부터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해 무상보육비 분담분을 못 내겠다고 나가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기초연금 분담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복지 디폴트(지급 중단)’ 가능성마저 내비쳤다. 정부의 지방세 인상 계획은 다분히 이 같은 지방정부의 요구를 감안해 마련됐다는 혐의가 짙다. 국세 증세 대신 지방세 인상으로 복지지출 증가분을 충당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편법 증세에도 불구하고 날로 늘어나는 복지재원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복지지출 증가속도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복지비를 지금처럼 계속 늘려갈 것인지, 늘린다면 그 재원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다시금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국민이 세금을 더 못 내겠다면 복지를 더 늘릴 수 없는 것이고,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답을 구하라는 것이다. ‘증세 없다’는 공허한 구두선에만 매달려 얼렁뚱땅 세금을 올릴 게 아니라 복지지출과 재원부담 방안을 공론화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