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는 혼자 놀고 온 남편|불평하자 버럭 고함…참고 살아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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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빨리 밥 차려 오지 못해 ! 』아빠의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놀란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 아들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막 책을 펴놓고 숙제를 마저 하려던 딸애들은 염문을 몰라 눈만 똥그래졌고, 쿵쾅, 쿵쾅·…,2층에서 내려오는 큰 아들애의 요란스런 발자국 소리 등으로 우리 집은 전에 없이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예가 아니 시잖아요. 너무 몰아 세우지 마세요.』
대학 1년 생인 큰 아들애의 조용한 합의에 막내아들을 달래랴, 밥상을 차리랴 경황없는 중에서도 나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그날 밤은 달무리가 유난히 고운 일요일 방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랜만에 가까운 어린이 놀이터를 찾았다.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함께 모처럼 나는 먼 옛날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이와 함께 있었으면····.』그이가 미워졌다. 집안일 때문에 같이 갈 수 없었지만, 혼자서만 강화 전등사에 놀러간 그이에 대한 미움이,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게다.
그이는 먼저 돌아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나 밥 안 차릴래요.』나의 한마디에 그이가『빨리 밥 차려 오지 못하겠느냐』고 목청껏 고함을 지른 것이 그날 밤 사건의 모든 것이다. 처음에는『밤늦게 어딜 다니느냐』는 퉁명스런 말 대신 웃으며 반겨주는 그이었지만, 토라진 나의 한마디는, 시장기와 더불어 그이의 오랜 잡음이 마침내 분노가 돼 한꺼번에 폭발하게끔 하고도 남았을 게다.
7식구의 뒷바라지에 피곤함은 몰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는데서 오는 나의 불평을 늘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이.
일요일이면 아침마다 아빠를 닮아 애들까지 늦잠꾸러기가 아니냐고, 단잠을 깨우고, 잔디의 풀을 뽑고, 정원수의 벌레를 잡으라는 등, 수 없이 늘어놓는 나의 잔소리마저 다만 미소로써 받아주던 그이가 아니었던가.
『버려야지. 버려야한다.』말뿐이지 이제는 버릇처럼 되어버린 나의 단점들을 여태까지 버리지 못하는 부족하다. 부족한 이 엄마를 그래도 감싸 주려하는 나의 소중한 아이들, 그리고 오직 인내로써 가정의 화목을 지켜온 그이를·위해 나는 그 날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온갖 불평을 만물 뿌리째 뽑아 없애 버리고, 대신 내 가족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포근한 안식처를 내 마음 깊숙이 마련해 야겠다고.<서울강서구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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