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다섯번째 음반 발표 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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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눌한 말투,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 그 느긋한 이미지와 달리 윤상(35.사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고민이 많은 완벽주의자라고 평한다. 1991년 가수로 데뷔한 후 10여년 동안 겨우 3개의 정규 앨범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윤상이 지난해의 4집에 이어 1년 만에 5집 '데어 이즈 어 맨(There is a Man)'을 발표했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어지간히 이른 편이다.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라도 한 걸까.

"고민이 줄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1집의 '이별의 그늘'이 기대 이상으로 성공한 후 제가 추구하는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 사이에서 많이 갈등해왔어요. 그런데 싱글 음반이 상업적으로 실패하는 등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대중성을 적당히 받아들인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음악은 제 평생 할 일이니까요."

그래서일까. "라틴 비트와 한국적인 서정성의 완벽한 궁합"이라는 등의 호평을 받았던 4집 '이사'에 비해 실험성은 줄었다. 대신 전체적으로 듣기 편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이전 앨범들에 비해 유난히 게스트 세션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가수로서의 윤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났어요. 모든 곡을 제가 부르려고 하면 정작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어지거든요."

의미심장한 가사의 '근심가'를 맑은 음색으로 상큼하게 소화해낸 신인 여가수 신예원을 비롯,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지누.이상순, 'bk!' 김범수, '긱스' 출신의 정재일 등이 피처링에서부터 작곡.편곡에까지 참여했다. 어딘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윤상 특유의 리드미컬한 음악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건 바로 그들이다.

해외 뮤지션들도 이 음반에 또 다른 색깔을 보탰다. 그가 버클리 음대에서 사귄 교포 뮤지션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그곳 친구들이 부른 '굿 올드 러브 송: 사이드 A'와 '사이드 B'는 전형적인 팝 발라드와 랩 스타일의 곡들. 또 삼포냐.퀘냐 등 라틴 악기의 리듬과 몽환적 분위기가 어우러진 '우화'나 콜럼비아 여성이 부른 '꿈, 너의 목소리'에선 그가 심취해온 라틴 음악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들에 비해 타이틀곡인 '어떤 사람 A'는 그의 이전 스타일에 가장 가까운 발라드. 사실 '꿈, 너의 목소리'를 자신이 다시 부른 것이지만 분위기는 또 다르다. 사랑하는 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연극의 엑스트라에 비유한 작사가 박창학의 가사가 애잔한 느낌을 더한다.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박창학의 가사는 '길은 계속된다'에서도 일렉트로닉한 사운드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지난해 5월 결혼과 함께 음악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던 윤상은 올 봄학기를 휴학하고 이번 음반에 공을 들였다. 다음달 초 다시 보스톤으로 돌아갈 예정.

"음반을 만들면서 공부하자면 3,4년 안에 졸업하긴 힘들 것 같다"며 웃는다. 내년엔 그곳에서 사귄 뮤지션들과 함께 와 콘서트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공부가 좀 길어지면 어떠랴. 뮤지션을 향한 그의 길은 계속될 것을.

글=김정수,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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