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공개하고 매주 주민 데이트…'공주' 나경원의 스킨십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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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나경원(3선ㆍ서울 동작을) 의원은 최근 한 지역구민으로부터 휴대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하교하다 웬 어른이 낫을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다”는 내용이었다. 나 의원은 곧바로 해당지역의 같은 당 구의원에게 연락을 했고, 학교 주변엔 폐쇄회로(CC) TV를 설치하는 등의 예방조치가 취해졌다. 나 의원은 “재선 때까지만 해도 극소수 지역구민에게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며 “하지만 요즘엔 웬만하면 다 알려 드리고 대신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문자를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악성 민원전화는 전혀 없고 오히려 지역구민들과 소통이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경원이 달라졌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특보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주요 당직을 맡으며 얼굴을 알렸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엔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그는 늘 화려했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의 ‘엄친아’ 이미지까지 더해져 그에겐 ‘공주’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그러나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이후 33개월여간 야인 생활을 하다 돌아온 그는 친근한 이미지로 지역정치에 올인하고 있다. “스킨십의 폭이 넓어졌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6일엔 당협 사무실에서 ‘나경원의 토요 데이트’를 열었다. 일종의 공개 민원상담장으로 8월말에 이은 두번째 개최였다. 행사엔 50여명의 지역구민들이 참석했다. 홍보를 위해 당협 사무실에 현수막을 내걸고 휴대전화를 확보하고 있는 지역구민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띄웠다. 그러자 수십명의 구민들이 자발적으로 사무실을 찾은 것이다. 이날은 학교 체육관 건립과 참전용사 수당 인상에 관한 민원이 제기됐다. 3시간여 진행된 상담에서 나 의원은 주민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나 의원이 3선 의원이 돼 화려하게 컴백할 때만 해도 그가 어떤 당직을 맡을까, 중앙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정작 나 의원은 자신의 활동 폭을 거의 지역구로 한정하다시피 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공개한 것도, 토요일마다 민원상담을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나 의원은 ”정치를 하면 할수록 지역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중앙정치가 주로 ‘말’로 하는 것이라면 지역정치는 ‘일’과 ‘소통’이다. 지역정치를 잘 하면 어떤 큰 일도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국회를 떠나있는 동안 많이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인의 휴대전화에 대해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건다’는 얘길 듣고 소통은 휴대전화 번호 공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내가 스스로 평가해도 지역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스킨십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씌워진 ‘공주’ 이미지를 털려는 노력이냐고 묻자 나 의원은 ”과거에 국민들에게 예의를 다한다는 차원에서 보여준 것들이 본의 아니게 거리감을 준 것 같다. 7ㆍ30 재보선 때엔 거리감을 줄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거기간 그는 수행원 없이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지역을 누볐다.

나 의원이 아무리 지역정치에 집중한다 해도 3선 의원인 그에게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최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나 의원은 “서울의 당세 확대와 원외 위원장들의 역할을 넓히는 것이 시당 위원장으로서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 외에 국회에서 이루고 싶은 꿈도 있다. 18대 국회에서 당 공천제도개혁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추석 연휴가 끝나는 즉시 오른프라이머리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국회 선진화법 개정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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