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기와 아기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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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장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몇 정류장인가 지날 무렵 아기를 업은 여인이 차에 올랐다. 돌이 갓 지난 듯한 그 아기는 두 개의 가지가 적당히 굽어져있는 의자모양의 미니지게(?) 위에 덩그러니 올라 앉혀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기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등뒤의 아기가 졸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치미를 때고 서있고 애꿎은 아기의 머리와 팔다리만이 차가 흔들리는 대로 이리저리 넘어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를 따라 나들이를 가곤 했다. 얄팍하니 솜을 두고 촘촘히 누벼만든 고운 빛깔의 포대기률 야무지게 여며 동생을 업은 엄마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엄마 등에 푹 파묻혀 잠든 동생이 너무나 포근하고 편안해 보여 한없이 부러워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후에 나도 아기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엄마처럼 야무지고 포근하게 아기를 업을 수 없는 게 큰 불만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아기가 등에 착 붙지를 않아 언제나 엄마 따로 아기 따로였다.
언제부터인지 아가를 너무 꽁꽁 업어주면 다리가 보기 싫게 굽어지고 엄마와의 너무 밀접한 접촉으로 자립심도 없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포대기 대신 미니지게(?)가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낡은 포대기를 서슴없이 내버리고 새롭고 편리한 기구를 사용할 줄 아는 엄마들이 참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아기를 낳고 어느새 국민학교 고학년 짜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라도 새로운 교육법을 터득하고자 아동교육에 대한 강의는 빠짐없이 찾아다닌다. 그곳에서도 항상 강조되는 것은 아이들의 자립심이다.
『넘어진 아기는 제 스스로 일어나도록 키워야한다』 『한번 정한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지 때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면 안 된다』 등등….
누가 도와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고 때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규칙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는 이야기들이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부감이 일어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받은 작은 도움은 후에 남의 커다란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커 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사소한 「어김」쯤은 따뜻한 충고와 격려로 얼마든지 교육적으로 바로잡아 갈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잠든 아기를 둘러멘 채 높은 구두를 신고 무릎 한번 구부러짐 없이 또박또박 걸어가는 젊은 엄마를 바라보며 「자립심」을 외치는 우리의 교육방법이 결국은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 세상은 더욱 사막해지는 게 아닌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이불장 제일 밑에 깔려 긴 잠에 빠져있는 우리아이들의 포대기가 왠지 나의 피붙이로 느껴지는 착각도 함께 해보는 여름날 오후다. <서울시 구로구 독산3동 미도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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