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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세상과 다시 만나는 나만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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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가위 연휴다. 바쁜 일상에 치여 마음으로만 찍어두었던 책장을 펼쳐 볼 시간이다.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추석에 읽으면 좋을 책을 추천한다. 묵직한 철학서부터 발랄한 동화까지 다양하게 골랐다.

※ 도움말 : 교보문고 이익재(인문)·유한태(시·에세이)·오주연(역사) MD, 예스24 김태희(인문사회) MD, 박숙경 아동문학평론가

유령 퇴장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문학동네, 384쪽, 1만4500원

차가운 벽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460쪽, 1만4500원

소설   미국 작가 필립 로스(81)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0순위’로 꼽힌다. 묵직한 주제 의식, 풍성한 작품 분량 등이 돋보인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 꾸준히 소개된다. 『유령 퇴장』은 유대인 작가 네이선 주커먼이 주인공인 아홉 편의 소설 중 마지막 작품. 주커먼은 로스의 분신이다. 전립선 암 등으로 고통받는 70대의 주커먼이 과거 존경했던 작가에 대한 추문 폭로를 막는 과정에서 느끼는 무력감, 노화에 대한 성찰 등이 미국의 정치 현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역시 미국인인 트루먼 커포티(1924∼84)는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다. 『차가운 벽』은 지난해 국내 출간된 그의 소설집. 10쪽 미만에서 40여 쪽까지 21편의 단편이 실렸다. ‘마지막 문을 닫아라’는 배신과 이간질, 음주와 퇴폐가 어우러져 흥청망청한 작품이다. 인생의 단면을 갈라 보여주는 단편 특유의 날카로움이 빛난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한국 단편 문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대상을 받은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등 7편이 실려 있다. 한국 단편 특유의 정교하고 섬세한 매력을 맛볼 수 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로버트 노직 지음
김한영 옮김, 김영사
435쪽, 1만8000원

세계사를 움직이는 …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뜨인돌출판사, 287쪽, 1만3000원

인문   연휴는 모처럼 진지한 책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는 2002년 세상을 떠난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안내하는 생각 여행이다. 부와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이 문제인가, 신은 왜 악의 존재를 허락했는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 한번쯤 머리를 스쳐갔으나 골치 아파 포기했던 문제들에 대해 사색의 힌트를 던진다. 이익재 교보문고 인문분야 MD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의 다섯 가지 테마로 세계사를 꿰뚫는다. 차·술·코카콜라가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는지, 금이 어떻게 세계경제의 틀을 만들었는지 등 흥미진진한 사례가 가득하다. 역사 공부를 시작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세계사의 큰 줄기를 잡을 수 있을 듯.

 명절엔 TV를 트는 대신 알랭 드 보통의 신작 『뉴스의 시대』(문학동네)를 집어드는 것도 좋겠다. 쇄도하는 뉴스와 이미지 속에서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뉴스를 소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잘 왔어 우리 딸
서효인 지음, 난다, 280쪽, 1만3000원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현대문학, 256쪽, 1만3000원

에세이   『잘 왔어 우리 딸』은 올해 나온 에세이집 중 단연 돋보인다. 시인 서효인이 첫딸 은재를 맞이하며 진짜배기 아빠로 커가는 과정을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냈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다운증후군 은재를 키우면서 ‘내 특별한 아이가 평범하기를 바랐던’ 미숙한 남자에서 ‘세상의 모든 아이가 일반적으로 빠짐없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는 아버지로 성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특정 공간에 아로새긴 시간의 무늬를 훑는다. 어린 시절 부엌의 아궁이, 옛 연인을 마주한 고속도로 휴게소, 등단 통보를 받은 공중전화 부스 등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특별한 장소를 매개로 지나온 생을, 과거의 꿈을 되돌아본다. 작가의 서정적 문체를 따라 스물세 곳을 유랑하고 나면 과거를 통해 오늘의 삶을 복원하는 작가의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엄마의 도쿄』(김민정 지음, 효형출판)는 1992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 둘을 키우며 싱글맘으로 살았던 엄마의 인생을 기록했다. 저자의 담담하지만 애틋한 목소리가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한가위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후박나무 우리 집
고은명 지음, 창비, 152쪽, 8000원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권정생 지음, 산하, 202쪽, 7500원

어린이  이른 추석은 계절도 달음질치게 만든다. 『우리 동네 전설은』(한윤섭 지음, 창비)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고향 마을로 전학 온 도회 아이 준영이다. 으스스한 마을 전설들 덕분에 친구들끼리 똘똘 뭉쳐 학교에 다니며 겪는 이야기다. 햇빛과 공기의 변화를 통해 계절을 느끼는 장면들이 이 책의 백미다.

 ‘명절 증후군’에 대한 동화도 있다. 『후박나무 우리집』은 한옥에 모여 살며 1년에 여덟 번 이상 제사를 지내는 대가족 이야기다. 이 집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제삿날 엄마만 일하는 건 옳지 않아요”라고 항명하는데-. 세대를 넘어선 공감을 주는 권정생의 동화도 있다. 연작 동화집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는 가난한 마을에 내려온 하느님의 세상 구경 이야기다. 어려운 형편에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이 정겹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나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만화 전집 선물 외에 새로운 것을 찾는 독자라면 최근 제10권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생명과학』(이정모 글·홍승우 그림, 비룡소)으로 완간된 ‘주니어 대학’ 시리즈를 권한다. 심리학·인류학·건축학 등 분야별로 쓴 청소년 인문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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