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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보호막' 불체포 특권, 개인비리 방패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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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김 대표는 “전날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국민의 비난이 비등하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그 비난은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성대 결절로 수술을 받고 한 달 만에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서청원 최고위원. [김형수 기자]

헌법 제44조 1항.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의 근거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2일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존폐 논란을 빚고 있는 불체포 특권. 1948년 제헌헌법부터 인정했다. 불체포 특권을 없애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당장 폐지하긴 불가능한 상황이다.

 헌법학자들은 불체포 특권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한양대 전상현(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에게 임기 중 형사소추를 면제해 주는 것처럼 불체포 특권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신분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도입한 것”이라며 “삼권분립과 민주적 정당성을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엔 소수 야당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경북대 신평(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불체포 특권과 체포동의안 제도는 검찰의 부당하고 정치적 성향의 수사가 있을 경우를 대비한 안전판으로 볼 순 있다”고 말했다.

 제헌헌법의 뿌리인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1919년)에도 불체포 특권은 들어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 헌법에도 불체포 특권 조항은 빠지지 않는다. 그런 불체포 특권이지만 결국 오·남용 때문에 존폐논란이 불거졌다. 정치권 스스로 비리 의원을 감싸는 데 악용한 탓이다. 불체포 특권은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뇌물 등의 범죄를 저지른 의원이나 선거 때 수천만원의 돈을 뿌려 당선된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의 방패 뒤에 숨었다. 건국 이래 모두 55건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이 중 12건만 가결됐다. 절반 이상은 표결에 부치지도 않고 자동 폐기됐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의원들은 잠시 구속을 면했지만 결국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불체포 특권과 체포동의안 제도의 틀은 유지하되 국회 스스로 악용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이종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날의 변화된 정당 민주주의에서 불체포 특권과 같은 의회의 특권은 의회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소수 야당에만 적용해야 한다”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권을 오·남용하는 의원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진국의 경우 불체포특권 조항이 적용되는 예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독일 기본법은 단순히 회기가 아닌 의원 전체 임기 중 불체포특권을 인정하고, 체포나 구금뿐 아니라 기소를 할 때도 의회의 동의를 받게 했다. 현행범으로 범행 당일이나 이튿날 체포되는 경우만 제외된다. 다만 독일은 체포동의안이 제출되면 국회의장이 위원회를 만들어 혐의 사실을 조사하게 한 뒤 의원들에게 표결 전 보고하도록 한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정부가 제출한 20여 건의 체포동의안 중 1954, 58년 두 건을 제외하곤 모두 가결시켰다. 1543년 세계 최초로 불체포특권을 도입한 영국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반역죄, 중죄, 치안방해죄, 긴급입법에 의한 구금 및 법정 모욕’의 경우 불체포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치안방해죄의 경우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까지 포함돼 있다. 불체포 특권의 힘이 상당히 빠졌다.

 미국도 연방헌법 제1조 6절 1항에 “상하 양원 의원은 반역죄와 중죄 및 치안방해죄를 제외한 어떠한 경우에도 체포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영국처럼 ‘치안방해죄’를 포함하면서 불체포 특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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