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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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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즈옴 웬만한 기업이면모두들 기획조정실이니 기획부· 조사부등을 따로 두어 비중높게 운영하고있다.
대부분 최고경영자의 측근에서 그 기업의 두뇌 역할을 해낸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젠 꼭 물건을 만들어 파는것만이 장사가 아니고 경제전체를 내다보고 머리를 잘쓰는것도 못지않은장사수단임을 충분히 깨닫게된것이다.
신입사원을 채용할때도 우수한 사람을 조사나 기획부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고대기업들 사이에는막대한비용을 들여가며 유명인사의 고문제도까지 활용하고있다.
기업들이 이같은 조사·기획업무제도를 배워온 곳은 바로 은행에서였다.
그런데 이젠 은행이 도리어 기업들에 배워야 할처지가 되었다. 그만큼 은행의 조사부는 관심밖의 부서가 되었다.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창의적인 길잡이가 되어야할 조사부가 그럴만하지 못한 여건과 무관심속에서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버린것이다.
몸담고 있던 유능한 인재들이 은행을 떠나갔다. 공교롭게도 70년대중반 은행의 몰락과 기업군의 눈부신 성장이 때를 같이했던 까닭에 은행의 인재들이 대거 기업으로 옮겨갔다.
자기능력에 맞게 대우를받을수 있었고 기량 발휘도 가능했다.
산업은행의 경우 봉급이깎이던 74,75년 언저리에은행을 떠난 조사부직원수는 30여명에 달했다.
전체 조사부직원수가 l백명가량에 블과했으니까 3분의1이 빠져나간 것이다. 더우기 그들 대부분이 최소한 입행 5년이상의 경력에 요소요소에서 능력을인정받고 있던 그룹들이었기 때문에 질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막심한 손실이었다.
당시 4명의 박사학위소지자 모두가 기업으로 떠난것을 비롯해 산은조사부는 한동안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관계자는 회고한다.
그러한 인재유출현상은 한국은행조사부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들어가는 경우뿐만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유학길에 올랐으며 공부를끝내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오히려 예의적인 경우로 여겨졌다.
한은과 산은의 조사부업무는 단순한 은행으로서의 조사활동이 아니었다.
한은은 금융에서, 산은은실물경제에서 양대산맥을 형성해 왔다.
국가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기초통계를 작성하고 현안문제를 분석, 대책까지 마련해왔다.
특히 여타 연구기관이 없었때의 이들 두은행조사부의 위치는 바로 경제정책의 산실이었고 또 그럴만한 인재들도 지니고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많은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기본적인 기능은 아직도 살아있다.
워낙 구멍이 컸던 산은의 경우는 여태까지 상당함후유증을 앓고있으나 한국은행조사부는 금융정책전반의 실질적인 정책입안시 자리를 여전히 고수하고있다.
금융에 관련된 굵직한 조치가 나왔다고 하면 발표하는 곳이 기획원이 됐든 재무부가 됐든간에 실제로는 한은조사부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KDI나 국제경제연구원등을 비룻한 유수한 연구기관들이 많이 생겨났고 대우도 그들이 훨씬 낫지만 한은조사부의 자부심은 뒤지지않았다.
한은에도 경제학 박사들이 많이 있지만 박사대접을 가장 소홀히(?)받고있는 곳이 한은일것이다.
기초통계를 제손으로 만들어내고 오랫동안 현실경제를 진맥해온 경험과 「감]이 그들의 서슴없는 자랑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여느은행원이나 마찬가지로 종전의 긍지는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종합금융회사등을 비롯한 제2금융권이 눈에 띄게 부상함에따라 새로운 전직처로 등장하기도한다.
한은과 산은의 조사부는그렇다치고 나머지 특수은행과 시중은행들의 조사부는 예나 지금이나 침제상태를 면치못하고 있다.
은행원들 스스로도 조사부근무를 한직으로 여긴다. 은행의 머리를 말이다.
외국 대은행들의 조사부가 독자적으로 세계경기전망까지 하고 있는데 비하면 우리의 조사부는 자기네 은행 수지전망조차 힘에겨운 실정이다.
주택은행조사부는 주택금융에 대해서, 중소기업은행조사부는 중소기업들의 실태에 대해서 얼마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조차의문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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