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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151) 「6·25동란」반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워싱턴 시간으로 50년6월24일(토) 밤 9시쯤. UP통신의 워싱턴지국 야근기자인「도널드·곤잘레스」씨로부터 집으로 전화가 왔다.
외교관생활에는 파티가 많아 자주 저녁외출을 했는데 그날은 우연히도 집에 있었다. 게다가 집사람도 임신 6개월이었다. 우리 부부는 같이 공부하는 입장이어서 결혼 후 6년간 아이를 가지는 것을 미루어 왔었다.
「곤잘레스」기자는『당신 나라가 북한의 침범을 받고 있는데 아는바있는가』고 물었다. 순간 나는「곤잘레스」기자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닌가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곤잘레스」기자의 음성을 들으니 진짜로구나 하는 감이 느껴졌다. 나는『그게 무슨 소리냐. 근거가 있는 얘기냐』고 물었다.
「곤잘레스」기자는『지금 막 서울발신으로 당신 나라가 북한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들어왔는데 당신 정부에서 들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기사는 바로 6·25동란 발발을 제일 처음 세계에 알린 UP의「재크·제임즈」기자의 특종보도였다.
나는 더 상세한 보도가 들어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UP에 그런 기사가 들어왔다면 AP에도 들어오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떠올라 AP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외교문제 담당의「모리스·해리스」기자를 찾았다.
「해리스」기자는 집에도, 사무실에도 없었다. 대신 야근기자에게『한국에 관한 무슨 뉴스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 기자는『UP에 범상치 않은 뉴스가 들어온 것 같은데 AP는 아직 자세한 보도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기자에게도 역시『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는 곧 내가 제일 친하게 접촉하던 UP의「스튜어트·헨슬리」기자를 찾으려 했다. 마침「헨슬리」기자는 워싱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시외전화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헨슬리」기자는 워싱턴지국으로부터 연락은 받았으나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며 곧 워싱턴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당시 미국에는 AP(Associated Press) UP(United Press) INS(United Press International)등 3개의 통신사가 있었는데 나중에 UP와 INS가 통합해 UPI가 되었다. 「헨슬리」기자는 한국동란에 종군했으며 나와는 친구처럼 지냈다. 지난 69년 내가 태국대사로 근무할 때 방콕에서 열린 월남참전 7개국 외상회의 때「로저즈」국무장관을 수행하고와 반가운 해후를 한 적도 있고 지금도 건필을 휘두르고 있다.
나는 통신사와의 접촉에서 신통한 회답을 못 얻은 채 국무성에 전화를 걸었다.
신분을 밝히고「나일스·본드」의 이름을 대면서 한국담당직원이 있으면 바꿔달라고 했다. 아무도 없다는 숙직자의 대답이었다. 급한 김에 그 직원에게 UP의 보도내용을 설명하고 서울에서 무슨 보고가 온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전후 사정은 모르겠고「링컨·화이트」대변인이 곧 국무성에 나오겠다는 전갈이 있었다』면서 얼마 후 다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나는 국무성 직원이 전화로 섣불리 사건내용을 얘기할 수는 없으나 뭔가 있다는 암시를 주려고 노력한 흔적을 느꼈다.
또 주말이라 누구나 다 교외로 나가있을 시간에 대변인이 밤중에 국무성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UP의「곤잘레스」기자로부터 첫 전화를 받고 난 뒤 이 모든 확인과정이 불과 20분 동안의 일이었다.
나는 장면 대사를 보좌하는 입장에서 이런 놀라운 정보를 되도록 자세히 파악한 뒤 보고하려는 생각에서 여러 곳에 연락을 취했다.
나는 우선 이 정도로 장 대사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매일 저녁 칵테일이다, 디너파티다 해서 두세 군데를 다니던 장 대사가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약속이 없었던지 관저에 있었다. 20여분간에 일어난 일들을 간략히 보고하고는 곧 공관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당시 워싱턴 교의의 타코마파크라는 곳에 있었는데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였다.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한달 전 이 대통령이 서울에서 외신기자들에게 밝힌 말을 연상했다. 이 대통령은『북한의 남침위협으로 우리는 상당히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렇다고 해서 히스테리컬 하거나 낭패감에 젖어있지는 않다. 미국에 대해 불평할 기분도 나지 않지만 당신네들이 알아야할 것은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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