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권력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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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헤이그」미 국무장관이 중공을 방문하고, 미국이 중공에 무기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사실과, 29일 중공의 당제11기 중앙위 6중전회에서 호요방이 당주석 자리에 오르고 화국봉이 부주석으로 강등된 조치가 무관하지 않음은 모택동 사망(76년)후 지난 5년간 소위 실천파와 범시파(문혁파)간의 권력투쟁을 회고해 보면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등소평을 정점으로 하는 실천파의 기본철학은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것이고, 그들이 실천하고자하는 정책은 농업·공업·국방, 그리고 과학과 기술의 근대화다.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말은 모택동의 언행에는 오류가 있을수 없다는 왕동흥 부주석중심의 범시파의 「모택동 신앙」의 정면부정이고, 4대 근대화노선 역시「인적요소」와 혁명적인 정열을 중시하는 모택동 노선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의미한다.
78년 12월, 당 3중전회에서 실천파와 범시파가 모택동 사상의 평가와 앞으로의 노선을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대세는 실천파쪽으로 기울어 모택동의 공적과 함께 과오가 인정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택동 노선을 맹종하는 것보다는 현실주의적인 노선이 요청된다는 실천파의 이론이 채택되었던 것이다. 그 현실주의 노선에는 구·미·일 선진국의 기술·자본도입이 포함된다.
이와 같이 실천파에 의한 범시파 공격은 4대 근대화 노선과 모택동에 대한 재평가의 형태로 행해졌는데, 그런 와중에서 화국봉이 지킨 위치, 그가 맡은 역할은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자면 화·등 연합체제로 자의건 타의건간에 실천파를 간접 지원한 셈이 되었다.
79년 9월 당 4중전회에서 실용주의노선이 확인되고, 80년 2월 5중전회에서 범시파가 정치국에서 축출되고 실천파의 교조격인 고류소기의 복권이 선언되었을 때 이미 실천파는 탄탄대로에 올라서고 「등소평 시대」의 막은 열린 것이다.
우리가 등소평의 실용주의노선에 유달리 깊은 관심을 갖는 까닭은 그의 정책이 구·미·일의 선진대본과 기술도입을, 특히 안보 면에서는 소련의 팽창주의 정책에 미일과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실천파는 지하의 모택동이 진노하고 유소기가 갈채를 보낼 물질적인 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과학·기술의 향상을 위해서 많은 학생· 지식인들을 구미에 유학시켜 폐쇄되었던 중공사회의 문호를 상당히 개방하고있다.
오늘 현재로는 화국봉의 강등, 범시파의 완전 몰락으로 마침내 등소평을 구심점으로하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가 확립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등소평에게는 양파가 대립하는 사이에 독버섯처럼 자란 관료층의 무사안일주의, 경제의 비능률, 국민들간의 규율의 저하, 간부층의 특권향유와 오직 만연, 청년층, 특히 문혁 피해자들에의한 민주화의 요구같은 만만찮은 과제가 도전의 형태로 기다리고있다.
미·일·중공 삼각협력체제와 궤를 같이하는 등소평 체제의 안정은 우리와도 이해를 같이하는 것이라면, 중공의 이번 권력개편이 광적인 모택동 사상의 완전소멸과 서방세계와의 협력을 적극 모색하는 실용주의노선의 확고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를 우리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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