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살해 후 젖먹이 딸 방치한 30대 남성에 징역 20년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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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부인을 살해하고, 젖먹이 두 딸을 방치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는 살인 및 아동복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33)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이씨는 부인 이모(38)씨와 2009년 결혼해 세 딸을 낳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부인과 이씨 어머니 사이의 고부갈등이 계속되면서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갔기 때문이다. 결국 이씨 부부는 결혼 4년 만에 첫딸은 이씨가, 나머지 두 딸은 부인이 양육하기로 약속하고 2013년 9월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별거 결정 이후에도 이씨는 미용실 일을 하는 부인을 대신해 딸들을 보살피기 위해 수시로 부인 집에 들렀다. 그러던 중 부인이 자신이 키우고 있는 첫째 딸을 유독 심하게 구박하는 것 같고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에서 살해 계획을 세웠다. 결국 별거생활 일주일만에 부인과 고부갈등, 경제적인 문제, 이혼 등에 대해 말다툼하다 목 졸라 살해했다. 아파트 화단에서 미리 주워온 담배꽁초 2개를 부인의 시신 근처에 놔두고, 하의를 벗겼다. 외부 침입자가 강간을 한 후 살해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옆 방엔 한살, 두살배기 두 딸이 자고 있었지만 이씨는 그대로 현장을 벗어났다. 두 딸은 시신이 발견되기까지의 14시간동안 방치돼 있었다. 셋째 딸은 배가 고파 죽은 엄마의 젖을 빨기도 했다. 이씨는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 현장에서 벗어난 지 1시간 후 부인의 휴대전화로 "집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부인을 무참히 살해한 뒤 두 딸을 시신과 함께 내버려둬 죄질이 무겁다"며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형을 감량했다. 재판부는 "준비한 담배꽁초를 놓아두고 범행 1시간 후 문자를 보내는 등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특히 아무런 조치없이 범행현장을 벗어나 스스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는 두 딸을 방치해 죄가 무겁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 유족들과 합의했고 어린 세 딸들이 있는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판단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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