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해진 기업의 극단 지원 연극 진흥위한 바람직한 경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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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작비 앙등과 관객 동원 저조라는 이중 난 속에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연극계에 기업이 극단과 지속적인 우대를 맺고 제작비를 지원하는 바람직한 제작형태가 자리를 잡고 있어 반가운 소식이 되고있다.
제화주식회사「에스콰이어」와 손잡은 극단「성좌」(대표 권오일)가 그 대표적인 예.
「성좌」는 지난해 11월부터『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F학점의 천재들』『사랑은 기적을 싣고』등 연3편을 에스콰이어의 제작비 지원으로 무대에 올렸다.
지원액수는 편당 3백만∼4백만원(총 제작비의 3분의1 수준)에 팸플릿·티킷 등 인쇄비 일부.
『물론 충분한 액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극단의 부담을 그만큼 덜게되어 충실한 공연이 가능해지므로 졸속공연→관객저조→졸속공연의 악순환은 일단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극단대표 권씨와 연출가 조민씨는 돈보다는 공연예술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훨씬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에스콰이어의 판촉 실장 박희웅씨는『앞으로도 1년에 6∼7편의「성좌」공연을 지속적으로 지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조건은 그중 2편은 청소년을 위한 작품으로 꾸며야 한다는 것과 공연 티킷 중 일부를 에스콰이어 손님을 위한 반액 할인권으로 할애해야 한다는 것.
두 가지 모두「이윤을 소비자에게 돌린다」는 일종의 기업이미지 PR이 목적이다.
「성좌」의『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등 3작품은 불황 속에서도 모두 연장공연·재공연을 마련하는 등 호조를 보였는데 에스콰이어 매장에서 뿌린 2만여장(편당)의 반액할인권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이래저래「성좌」는 타 극단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있지만 사실 기업의 연극투자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극단「헌대」가 해태제과와 함께 운영해 오던 해태명작극장이었고「명성그룹」도 얼마 전 극단「실험」의『강릉 매화전』을 지원했다. 기업 외에 사회 유력 인사들로 조직된 후원회의 도움을 받고있는 극단도 몇몇 눈에 띈다.
중요한 것은 지원해주는 기업의 태도.
평론가 한상철씨(성심여대 교수)는『기업이 국민을 돕는 것은 백번 반가운 일이지만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기업PR이나 판매촉진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지원자 측이 초대권을 남발, 공연장이 어린애와 노인들로 수라장을 이루었던『강릉 매화전』의 경우는 돕는 방법의 미숙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 좋은 예다.
3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의 연극계를 돌아보고 최근 귀국한 원로 연출가 이원경씨는『뉴욕과 워싱턴 만해도 기업인들이 공동투자, 연극인들에게 실비로 대관 하는 극장이 적지 않다』며 1대1의 지원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배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무조건 지원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연극인들이 입을 모아『연극진흥을 위한 최선의, 최후의 보루』라고 손꼽는 기업의 연극지원은 기업가들이 연극의 투자가치를 실감할 때라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인들을 극장 안으로 끌어들여 지속적인 연극 애호인으로 남게 할만한「볼만한 연극」을 만드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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