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대학생의 위험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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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대학가의 소요현상은 우리사회의 깊은 관심과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오늘의 대학캠퍼스는 겉에서 보는 신연의 경지와는 달리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싸여 있다.
그동안 일부 대학생들은 세상이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시위들을 벌이고 있었으며 이들의 구호나 유인물의 내용은 사회의 외면속에서 오히려 그 색깔이 날로 변질되어 가고있다.
우선 이들이 현실비판의 경지를 넘어 현실부정, 국가부정적인 색채를 띠어가고 있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당혹하게 한다.
문공당국은 그런 현상의 사원을 극소수 「좌경이념서클」에서 찾고 있다. 이것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국회문공위에 보고된 「문제학생」들의 주장을 보면 체제에 대한 원초적 이해에서부터 커다란 간극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국제개방경제체재를 「매판경제」로 매도하고 있는 경우나, 자유 경제질서로부터의 단절을 청구하는 태도는 대학생 특유의 신선한 논리라고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것은 국가체제 자체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교부 보고에 따르면 문제의 학생들은 자유세계의 근간이 되는 집단안보체제마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곧 외세의존으로 규정, 반미로까지 비약하는데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의 다극화한 국제질서 속에서 독존과 배타적인 안보관이 얼마나 독선이고 허구인가는 새삼 세계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는 분쟁속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방없는 한국은 상상할 수 없다. 우방은 의존적 존재로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공동의 이해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있는 것이다. 또 이것은 오늘만의 현실은 아니며 세계사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국가의 정통성 논의도 그렇게 경솔하게 제기될 일이 아니다. 정통성의 뿌리는 궁극적으로 국민적 합의에 있으며, 그 어떤 주장이나 논리로도 이것을 위협할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의 정통성은 하루아침에 성립될 수도 없고, 하루아침에 부인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농민」이 대학 소요때마다 구호에 오르는 것도 결코 심상한일이 아니다. 「노동자」나 「농민」은 누구의 편이기에 앞서 선량한 국민이며 건실한 생활인이다. 바로 우리의 이웃이며 형제이고 혈연이기도한 이들을 특정목적을 위한 규합집단으로 이단시한다면 그처럼 위험한 사고는 없다.
바로 그런 이유와 신념 때문에 우리는 계급사회관을 경멸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본질적인 논의를 떠나서도 우리는 새삼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10·26사태가 빚어낸 가장 뼈아픈 교훈은 정치적 혼미보다는 경제적 혼미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경제는 2년의 정체를 겪어야 했으며 아직도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주위를 떠나지 않고 있다.
지금 사회불안과 소요의 재현으로 얻을 것은 국민적 좌절과 체념뿐이다. 잃을 것은 너무도 큰 것이다. 우리 민족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망이다. 그 다음에 찾아올 일은 자명하다.
이것은 한 정권의 차원이나, 특정인의 이해에 국한될 일이 아니다. 국가존립의 문제다.
대학은 민족과 국가의 점압적 활력소이며 지주다. 우리는 민족적 자순과 국가적 위엄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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