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환상 속의 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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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환상 속의 그대

별 제목이 다 있다 싶더니 급기야 ‘별바라기’라는 예능프로도 생겼다. ‘슈퍼스타K’처럼 스스로 별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니다. 자신의 별이 잘되길 바라는 프로다. 가수가 노래할 때 객석이 화면에 잡히는 비율은 10대 1 정도다. ‘별바라기’는 가수와 팬이 동등한 비중으로 참여하는 토크미팅이다. 충성도가 어지간하지 않고는 낄 수 없다. 스타의 생년월일부터 애완견 이름, 히트하지 않은 곡의 가사까지 줄줄 외운다. 스타는 놀라는 척(?)하면서 그 모습에 안도한다.

 일반 팬들의 호감은 대체로 옅은 짝사랑의 범주다. 적당히 빠져(in) 있다가 슬며시 빠져(out)나가도 거리낄 일이 없다. 끌리는 스타가 나타나면 바로 등 돌리는 건 다반사. 여러 스타들과 동시에 정분을 나눠도 지탄받지 않는다. 이 세계의 비정함을 아는 스타들은 팬들과의 송수신에 적극적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오래간다는 건 연예마을 ‘향약’ 제1조. 오래 버티려면 ‘보험’에 들어두는 게 안전하다.

 서태지 같은 가수도 ‘별바라기’에 나올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마침 그의 얼굴이 연예뉴스에 떴다. 아빠가 됐단다. 팬클럽 반응이 궁금하다. PD 시절 서태지 팬클럽 이미지는 일종의 종교집회였다. 그들은 어린 왕자가 잘되길 바랐고 잘됐을 때 함께 기뻐했다. 어려움에 처하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정겹고 눈물겨운 우애였다. 튀려고 혼자 오버하는 팬도 드물었다. 그들은 균등하게 박수 치고 한마음으로 경배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환상 속의 그대’는 “결코 시간이 멈춰질 순 없다”로 시작한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멤버 3명 모두 아빠가 됐다. 열광하던 팬들은 귀가했을까. 해바라기는 시들어도 ‘별바라기’들은 야광 봉을 다시 챙기며 피터팬의 귀환을 기다릴 것이다.

 인터넷에 신비주의를 치면 연관검색어로 서태지가 뜬 적이 있다. 거부감을 가진 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신비주의는 스타가 팬들을 만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다. 스타는 속이는 게 아니라 숨는 것이다. 숨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무랄 거 없다. 신비감이 사라지면 신비주의도 사라진다. 신비주의가 사라지면 부흥회의 불빛도 소란스러웠던 의리도 사그라진다. 산후조리원에 꽃을 들고 나타난 서태지를 보니 왠지 안심이 된다. 노래와는 달리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라고 말하지 않는가.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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