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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술상은 담백·웰빙 … 요즘은 육류 위주에 맛 자극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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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15면

산골 집에 고요히 앉아있으면 해가 긴데
한잔 술과 창포김치에 남은 향기 있네
-원천석의 『운곡 행록』(여말 선초)

주안상 문화 어제와 오늘

출렁이는 술잔은 따스함 머금고
소반엔 부드럽고 살찐 냉이나물 올라왔네
-임상원 『염헌집』(1686)

김치와 냉이나물. 옛사람들의 주안상에 깃든 ‘안주의 절제미(節制美)’를 잘 보여주는 재료다. 그렇다고 다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조선후기, 은진 송씨 송병하 가문의 조리서 겸 주안상 레시피를 들여다 보자.

‘좋은 송이 껍질 벗겨 엷게 저민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지고 두부 조금 섞어 유장 갖추어 각색 양념한다. …송이 저민 것을 넣고 마주 덮어쓰고 밀가루 묻혀 계란 씌워 지지되 국은 고기 많이 넣고 밀가루와 계란 풀어 끓이다가 송이 지져 낸 것을 다시 넣어 끓인다. 계란을 황백으로 부쳐 석이버섯 채쳐 뿌리로 쓰고 또 그 위에 후춧가루 잣가루 뿌려 쓴다. 반상과 요기 상에도 쓰며 주물상(晝物床)과 주안상에도 쓴다.’

주안상에 올릴 송이찜 요리 하나에 이렇게 정성을 들였다. 석이버섯은 『동의보감』에 ‘성질이 차고 평하다. 맛이 달고 독이 없어 속을 시원하게 하고 위를 보하며 피나는 것을 멎게 한다’고 했다. 술의 독성을 중화할만한 안주다.

“조리법이 재료의 맛을 잘 살리는 방식이다. 송이는 또 비타민 B2 함량이 높고, 소화가 잘되며 위벽도 보호한다. 전체적으로 식재료도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전통술과 잘 어울리는 웰빙 안주다. 담백하고 자극성이 없는 조선시대 주안상 문화와 레시피와 비교하면 현대인들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산정책연구원 강수현 영양사의 분석이다.

반가의 주안상에 난삽하지 않은 품격이 있었던 까닭은 조선 양반들이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접빈객(接賓客)’을 큰 덕목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황혜성의 『한국의 전통음식』에 따르면 제대로 된 주안상엔 청주·소주·탁주가 나오고 안주론 전골·찌개 같은 국물이 있는 음식, 전유어·편육·김치 같은 안주가 따랐다. 대체로 떡 벌어지지 않고 소박한 주안상이었다.

그런 전통이 요즘 어떻게 돼 있을까. 이화여대 서선희 교수 팀이 2008년 전통주 주점 4개 점포에서 소비자 402명을 대상으로 ‘전통술과 어울리는 음식’에 대해 조사했다. 전류 32.7%, 고기류 20.1%가 거의 휩쓸었고 두부·묵 요리 13.1%, 탕·국류 9.3%, 찌개·전골류 4.8%, 구이 3.1%, 회 2.7%, 무침 2.6%, 김치 2.1%, 볶음 1.9%, 튀김 0.7%의 순으로 나타났다. ‘굽고 지지는’ 무거운 안주가 반이 넘는다. 소득향상과 식생활 서구화로 육류 섭취가 늘어난 때문이겠지만 ‘소박함’을 넘어 고열량, 고염분, 단백질·지방 과다 섭취라는 부작용이라는 대가도 치러야 한다.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가 일반화됐지만 건강한 술안주문화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옛 조리서에 수록된 전통술에 어울리는 음식 재현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2008년엔 숙명여대와 한국전통주연구소가 함께 안주개발 조사를 했고 지난해에는 ‘떡·한과·전통주 페스티벌’이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개최됐다.

신창훈·이승률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chshin@asanin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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