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카르의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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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스카르」의 패배는 좀 태외다.
74년 범 「드골」파의 단결은 「지스카르」대통령을 탄생시켰다.
1차 투표결과는 43% 봉 32%로 「미테랑」이 우세했으나 이에 놀란「드골」파가 2차투표에선「지스카르」에게 속를 몰아줘 51대49로 간신히 역병승을 거두었었다.
이때의 수동갑이 바로오늘「지스카르」의 경쟁자인「시라크」파리·시장. 이번 제5공화국의 4대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지스카르」와 「시라크」의 분열은 바로「미테랑」의 집권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이다.
거기에는「지스카르」의 유별난「오만」이 작용한것 같다. 한때「엘리제」궁을 빠져나가 시민가임에서 저녁도 얻어먹는 평민생도 보이려했던「지스카르」는 세월이 갈수록 독선파 귀족취향으로 흘렀다. 그래서「프랑스」언논에선『왕이되려는 사나이』 라고 비꼬기도했다.
그의 인기에 또하나 치명타를 가한 초년의「다이어먼드」수뇌사건에도「지스카르」는 끝내 시원한 해명이 없었다.
『국가원수의 외국방문매의 관례적인 선물』 임을 강조할뿐 이미 박물관에 그 선물을 기증했다고 변명했다. 「지스카르」는 그의 해명이「프랑스」국민들에게 양해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번 선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지스카르」의 집권후 현항 대통령 임기7년에 재임규정은 너무 기니까 5연으로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대한 경고는 작년 2월부터「르·몽드」를 비롯한 양식있는 언론들이 개속해 왔다. 그러나 「지스카르」는 오히려 언론을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이는「무리」를 범하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인 「지스카스」의 7년 집권동안 「프랑스」는 영국을 제치고 EC권의 지도국으로 부상했으며 1인당GNP도 l만달러에 접근했다. 외국망명용들 사이의 정치테러를 빼면 두회적 무질서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실업이 문제였다.
실업률이 5%를 넘어 1백여만명의 구직포망자가 줄을 이어도「지스카르」정부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완전고용을 주장하는「미테랑」에게「프랑스」국민은 귀를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나폴레옹」3세가 퇴진하고 제3공화정이 들어선 187l년부터 오늘까지 7년임기의 「프랑스」대통령 17명가운데 오직 7명만이 그 임기를 채울수 있었다. 이가운데 2명이 14년임기를 바라보는 재선의 영광을 누렸으나 두번째 임기를 채우지는 못했다. 「드골」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
69년 4월 국민루표에 패배한「드골」은 그 다음날『나는 공화국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정지한다. 이 결정은 오늘정오부터 발핵한다』는 두마디 성명을 발표하고「콜롱베」로 은퇴했다. 「지스카르」의 퇴임의 변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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