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에 사무실이 파고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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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주거용 아파트 단지에 회사 사무실이 몰리고 있다. 소규모의 오퍼상이나 무역회사에서부터 정부기관의 연구소까지 각종 기관·업체들이 아파트를 사무실로 개조해 쓰고 있어 아파트가 순수 주거지라는 본래의 의미를 점차 잃고 있다.
이처럼 일부업체들이 도심지 사무실을 피해 아파트로 몰려드는 이유는 ▲도심지 사무실의경우 평당 20만∼25만원의 보증금에다 이에 따른 1할씩의 월세를 무는 높은 임대료에 비해 40∼50%의 절감된 비용으로 아파트를 빌어 운영할 수 있고 ▲비교적 쾌적하고 깨끗한 주위환경과 ▲가족적이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외국바이어들이나 고객을 맞아 상담을 벌일 수 있다는 이점 때문.
당국은 79년4월20일 이후 「주택 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아파트에 사무실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있으나 이웃주민들이 사무실을 깨끗하게 운영하는 등 주거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다고 별로 반대하지 않아 아파트 사무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아파트 단지인 이촌동·반포동·잠실 등지에는 지난 1∼2년 사이 개인사무실이 1동에 2∼3개씩 자리를 잡은 곳도 있다.
78년부터 사무실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50여 개의 사무실이 자리잡은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촌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곳 H아파트 27동205호의 경우 41평형 1채를 D교역·D플라스틱 등 2개의 무역회사가 1년 전부터 공동으로 전세로 입주, 각각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는 방 3개에 욕실 1개·거실을 갖춘 이 아파트를 편의대로 분할해 방 하나엔 응접실과 샘플전시실(쇼룸)을 만들고 5평쯤 되는 거실에는 책상과 여사무원을 두어 사무실로 쓰고있다.
두 회사의 직원은 각각 3명씩으로 모두 6명.
41평의 아파트에 4∼5개 책상과 소파를 들여놓아 비좁아 보이기는 하나 샘플이라고 해야 의류 10여점 정도와 견본책자 3∼4권일 뿐 대부분 서류로 일을 처리하고 있어 비교적 깨끗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D교역 부장 장종철씨(33)는 『아파트에 회사를 차린 것은 도심지 사무실에 비해 임대료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40평 짜리 사무실을 시내에서 구할 경우 보증금 1천만원(평당 25만원씩 계산)에 매월 1백만 원씩의 임대료를 내야하나 아파트를 빌 경우 1천5백만 원에 전세를 들었다해도 보증금과의 차액 5백만원에 대한 3푼 이자와 관리비 10만원을 따져도 한 달에 25만원 밖에 월세를 내지 않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사무실은 대체로 전세이기 때문에 구조를 주거용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으나 N맨션 302동45호에 있는 T물산의 경우 79년11월 당시 87평형 1채를 5천만원에 산 뒤 아예 방벽을 헐고 사무실용으로 내부구조를 고쳐 쓰고있다.
지난해 4월 분양한 서울 반포동 A아파트의 경우 35평형 1층 1채를 분양 받은 집주인이 전매를 위해 4월초 아파트를 복덕방에 내놓자 곧바로 Y상사라는 오퍼상이 들어서 사무실을 차렸고, 잠실6동 K아파트 1층(39평)에는 의상실이, 사직동 S아파트 2동(36평)에는 한국과학기술처 산하 한국기계 연구소가 입주해있다.
아파트에 오퍼상이나 무역회사 등이 들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도 아파트 주민들이나 집주인이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는 것은 『이들 사무실이 대체로 깨끗하게 아파트를 쓰고있고 업종성격상 사무실을 비우고 밖에 나가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인 듯하다』고 Y상사 대표 유영식씨(30)는 말했다.
서울 여의도아파트 단지의 경우 1∼2년 전만 해도 평균 1동에 1∼2채씩 들어있던 사무실들이 그동안 반상회에서 주민들 사이에 항의가 높아지자 모두 자리를 떴다.
◇용도변경 적법성=아파트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후 유흥업소 등이 아파트에 잠식해 환경을 해치는 사례가 늘자 당국은 79년4월20일자로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칙」을 제정, ▲사무실 ▲유흥업소 ▲소매업소에 대한 아파트 입주를 못하도록 했다.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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