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민유와 민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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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영」이라는 말은 「민간경영」의 약자다. 따라서「시중은행의 민영화」라고 하면 그 은행이 민간의 독자적인 창의력에 의해 경영된다는 뜻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번 한일은행의 경우는 민영화의 한발 이전단계인 민유화의 과정을 밟는 것이 된다. 이승윤재무장관은 바로 그런 문제도 고려한 듯, 주식만 넘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정부간섭을 받지 않는 시범적인 민영화가 되도록 보장하겠다는 약속도 곁들이고있다. 더욱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일은행의 민영화는 나머지 시중은행에 대한 테스트 케이스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금융산업의 현대화라는 시급한 과제와 직결되는 것이므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은행의 민영화, 금융의 자율화는 귀가 따갑도록 지적되어 온 문제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뿌리깊은 관주도형 경제구조와 관치금융의 체질때문이다.
정부가 개발·투자계획을 세우고 조정하고 자금을 배분하고 하는 여건속에서는 금융의 자율적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73년2월 정부소유주식을 무역협회에다 넘겨 민유화과정을 밟은 상업은행이 여타 시중은행과 다룰바 없는「관치」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은 그러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한일은행의 경우는 상은의 건철을 밟지 않고 처음부터 순수민영화를 시도해 보겠다는 것이어서 정부자세가 진일보하는듯 하다.
알다시피 금융산업은 실물경제와 표리의 관계에 있다.
실물경제가 커지고 발전하면 거기에 맞추어 금융도 달라져야 하고, 다른 한편 금융은 산업의 투자활동을 선도·조정하는 기능을 해야한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괄목할 성장을 했으면서도 부문간 불균형과 왜곡이 심해진 것은 따지고 보면 금융이 제기능을 못하고 낙후된데도 일인이 있다.
이제 경제현실은 더이상 관이 하나하나 간섭하고 지시하기엔 너무 커졌고 복잡해졌으며 어쩔 수 없이 민간주도체제로 전환해야할 고비에 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때 선도기능을 하는 금융산업부터 민간주도로 바뀌고 자율화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일은행의 민영화에 다시 한번 기대를 갖고 주목하고자 한다.
다만 현실적인 여건과 방법상 뒤따를 문제점에 대한 보완대책을 촉구하고 싶다.
우선 지금껏 벌여놓은 방대한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조달과 앞으로의 투자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을 감안할 때 과연 정부가 종래와 같은 금융배분을 지양할 자신이 있는 것인가.
은행의 실질적인 민영화라는 것은 자금을 커머셜 베이스에서 은행 스스로 판단, 운용하는데 있는 것이다. 정책자금의 이름으로 정부가 배정하고 지시금융을 계속하는 한 진정한 민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번째는 자칫 주인없는 은행이 되지 않을 것인가.
대주주의 주식소유와 의결권상한선을 10%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최소한 3∼4명이 어울려야 경영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그 경우 순조로운 협력체제가 이루어질 것인가. 그렇지 앉아도 비슷한 경우의 일부 지방은행에서 종종 경영내분을 일으킨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의 독점형태를 찬성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십분 강구하라는 뜻이다.
은행측으로 보면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종래와 같은 관의존적 타성은 빨리 불식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역시 순수 금융적 입장에서 「민유」만이 아닌 민영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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