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러시아 보물선을 건진다|"80조원 어치 싣고 울릉 근해에 잠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엄청난 재화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노일전쟁 당시의 「러시아」순양함 「드미트리·톤수코이」호 (6천2백t) 인양작업이 울릉도 저동 앞 바다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바다 밑 보화 인양의 발단은 4년 전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10월 일본 대마도 근해에서 「러시아」 침몰선 순양함 「아드미럴·나히모프」호(8천5백24t)를 발견, 백금덩어리를 건지기 위해 나서고 있는 일본 실업가 「사사까와」(세천량)씨에게 결정적으로 공헌한 고문서 전문가 「이즈미·마사히꼬」(천창언·59)씨가 77년 가을 독도에 관한 사료를 찾기 위해 울릉도를 방문했다. 그는 이곳에서 4대째 살고있는 홍순칠씨(54·울릉도관광개발주식회사 대표·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217)를 만나 홍씨가 희귀한 사료를 제공해준 대가로 「드미트리·톤수코이」호에 관한 이야기를 귀띔해주면서 함께 인양할 것을 제의해온 것.
「이즈미」씨에 따르면 근대 일본 해전사에서 확인한 결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노일전쟁 당시 북포주 대륙전쟁에서 참패한 뒤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해 「발틱」 함대에 총동원령을 내려 장갑순양함·구축함 등 32척의 전함을 일본 근해로 보냈다. 그러나 흑해에서 「아프리카」남단을 돌아 인도양·동남 「아시아」등지를 거쳐오는 기간이 6개월이나 걸려 수병들이 지칠 대로 지쳐 사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대한해협의 대마도·울산 앞 바다 동해·울릉도·독도 근해에서 10여 차례나 공략을 당해 전멸하고 말았다는 것.
당시 「러시아」 해군제독 「크로체스·도엔스키」 중장이 남긴 기록에는 「발틱」 함대의 군자금 및 일본 정벌 후의 평정자금 등 현 시가로 50조엔 (한화 1백50조원) 어치나 되는 금은화·백금괴 등을 「아드미랄·나히모프」호에 싣고 있었으며 이 배가 격침되기 직전에 절반이상을 「드미트리·톤수코이」호에 옮겼다는 것이다. 「나히모프」호는 l905년 5월27일 상오 9시 대마도 근해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집중포격으로 침몰됐고 「톤수코이」호 또한 불과 2일 후인 5월29일 상오6시46분 울릉도 저동 앞 바다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미 대한해협일대에서 궤멸되다시피 한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북상하는 도주로마저 일본 연합함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또 일부는 북해도 쪽으로 달아나다 풍비박산됐고 「톤수코이」호를 포함한 4∼5척은 저동 항으로 피신, 뒤쫓아온 일본 해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결과는 역시 참패였다. 이 때의 격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톤수코이」호 인양작업을 벌이고 있는 홍순칠씨의 할아버지인 홍재현씨(1958년 94세로 작고).
당시 40대의 어부이던 홍재현씨는 일제의 학정을 뼈아프게 느껴오던터라 쌍방의 함포사격이 빗발치듯하는 속을 어선을 타고 노를 저어 「드미트리·톤수코이」호에 올라 부상병을 마을로 데려다 치료해주는 등 「러시아」 함대를 도왔고 그 보답으로 함장인 대령으로부터 청동주전자 1개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는 것.
「톤수코이」호가 저동 앞 바다에 들어온 다음날 새벽 패배를 자인한 「러시아」 함대는 「톤수코이」호에 타고있던 5백여 명의 수병들을 2척의 구축함에 나누어 태운 뒤 『전함을 적군에 노획물로 넘겨줄 수는 없다』며 2척의 구축함에서 집중포격을 퍼부어 자침시키고 말았다. 이 때 함장인 대령은 함교(=갑판위로 올라가기 위해 배 옆에 설치한 철사다리)에 밧줄로 스스로 몸을 묶어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항상 『사나이는 멋있게 살고 대장부답게 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홍순칠씨는 회상했다.
홍씨는 할아버지가 가보로 물려준 높이 25cm·지름 20cm 크기의 청동주전자를 볼 때마다 「톤수코이」호를 생각해왔고 우연히 이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가진 일본인을 알게돼 금년 초 인양작업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나히모프」호를 인양중인 「사사까와」씨는 지난해 연말 한국을 찾았을 때 자신이 90억 엔을 들여 제작한 해저탐사용 잠수함을 동원, 공동작업을 필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홍씨는 우리나라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인양할 수 있다고 확신, 이 제의를 거절했다.
홍씨는 지난 25일까지 다섯 차례의 수중탐사결과 울릉도 어업전진기지인 저동항 촛대바위 앞 바다 1백50m지점 수심 1백15m에 「톤수코이」호가 수평으로 가라앉은 것을 확인했다. 서울 성림공영(대표 박세영·서울 원효로4가) 소속의 이병두씨(32) 등 미국 등지에서 교육받은 경력 8∼12년의 숙련잠수부 6명이 동원된 이 탐사작업에서 기술진은 초음파 수중탐지기·해저작업용 캡슐 등의 장비를 이용, 선체의 규모·형상 등으로 미루어 「톤수코이」호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홍씨는 『「나히모프」호에서 백금괴 등을 옮겨실은 배가 「톤수코이」호라는 사실과 저동 앞 바다에 침몰된 것이 문제의 배로 확인된다면 최소한 「사사까와」씨가 인양해도 남은 금액인 27조엔(약80조원) 어치는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액수는 미국이 70년대 「쿠바」북방 「멕시코」만에서 인양한 중세 「유럽」의 다이어몬드 상선과 신안 앞 바다 송·원대 유물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기록이다.
문제는 엄청난 경비. 한 명의 잠수부가 수심 1백m 해저에서 10분 동안 작업하는데 드는 헬륨산소 비용만도 50만원. 지금까지 2천여만원이 들었고 앞으로 수중에서 2∼3일씩 지낼 수 있는 해저작업용 캡슐 제작비 등 16억여원이 소요된다는 것.
홍씨는 5월10일쯤부터 2단계 작업으로 선체촬영 등 배의 각 부분을 점검한 뒤 6월 안으로 인양작업을 마칠 계획으로 정부의 보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기대한 만큼 많은 보화가 쏟아져 나올 경우 전액을 국가에 바치겠으며 자신은 할아버지의 교훈대로 대장부다운 일을 해낸 것에 만족하겠다고 했다. <울릉도=홍성호 김주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