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리포트] 이라크 재건 참여 '과욕은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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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리가 못살던 시절에 들은 얘기가 있다.

미국의 대외원조 부서(USAID)에서 일하던 사람이 "한국사람 만나기가 겁난다"는 것이었다. 한국사람은 안면을 트고 한동안은 아무런 기별을 안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선물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후 며칠 안에 예외 없이 뭔가 큰 걸 부탁하러 나타난다는 게다. 이번에는 더 큰 선물을 싸 안고.

그런 얄팍하고 어찌보면 뻔뻔스럽기까지한 계산에 질렸다는 얘기에 낯이 뜨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라크 전쟁이 한달만에 사실상 끝나자 우리도 이라크 재건사업에 참여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라크전쟁은 그 참담한 후유증과는 별개로, 엄청난 복구사업이라는 비즈니스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영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이 새로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게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비즈니스의 장이 열렸을 때 낄 수 있으면 끼여야 하는 게 또 비즈니스 세계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어떤 명분으로 이런 일종의 '몫 챙기기'에 나설 수 있을까.

물론 우리가 일찌감치 참전을 했다면 '승전국'의 일원으로서 내 몫을 주장할 수 있는 당당한 명분을 가졌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얼마전에야 공병과 의료부대 파견을 결정했고 아직 1진도 보내지 않은 상태다.

물론 국내외에서 반전의 목소리가 거세던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고 시기와 규모, 파견병력의 성격 등은 어찌됐든지 파병을 결정한 것만으로도 적잖은 역할을 한 거 아니냐고 자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쎄, 그 정도로 우리도 몫을 주장할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앞으로 2년 동안 515억~880억 달러의 재건비용이 필요하다는 이라크에 '인도적 지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1천만 달러를 내겠다는 정도의 태도로 말이다.

물론 반전에 앞장을 섰다가도 전쟁이 끝나가자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쪽으로 급선회하다가 이제는 내놓고 복구사업이라는 거대한 비즈니스의 장을 미국 혼자만 차지하게 할 수는 없다고 나선 프랑스나 독일보다야 낫지 않느냐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 복구사업을 놓고 주판알을 튀기고 있는 우리가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 부터 마시는 격'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제사회에서,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대접은 철저히 '주고받기'에 따라 이뤄지는 것인데.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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